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악인이 항상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며 의인이 항상 그 의로움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직한 자들은 상대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공정하게 줄을 선 사람들이 손해를 봅니다. 컨닝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열심히 공부를 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이 너무나 많으셔서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라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 죄악은 언젠가는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심판을 받은 자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또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악인이 영원히 형통하지는 않는 것처럼 악인이 영원히 버림받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악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회를 얻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속에서 우리는 그런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인은 아벨을 죽였지만 그로 인한 형벌로 곧장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지않고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을 팔아버리는 악을 행했지만 요셉의 용서를 통해 애굽에 와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새롭게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간음을 하였고 의로운 사람을 죽였지만 그로 인해서 자기 자신은 전혀 상처입지 않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 속에서 새로운 자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도 그런 회복과 구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축구에서도 자책골을 넣어 모든 비난을 받았던 선수가 다시 골을 넣어서 명예를 회복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기회를 날려서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던 야구선수가 다시 새롭게 놀라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퇴사해야만 했던 직원이 놀랍게도 새로 회사를 차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어제의 패자는 오늘의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비난만 받고 욕만 얻고 살게 하시지 않고 그 모든 수치와 괴로움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2. 사람이 주는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사람들이 물을 것입니다. 또는 스스로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 대답이 내가 잘해서, 혹은 운이 좋아서, 혹은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혹은 잘 모르겠다가 된다면 그 다음엔 꼭 동일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법이 없어집니다. 내가 다음 번에 또 잘하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운이 좋으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와주리라는 법도 없고, 잘 모르겠다면 다음 번에도 잘 모르게되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깨달음을 가져야 할까요?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슬픔과 곤고와 수고의 고역 속에서 놓아주시고 안식을 주셨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렇게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 우리는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 안식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누린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그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깨달았을 때 요셉의 형들은 진정한 용서함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도와서 애굽에서의 삶을 잘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세도 자신을 괴롭혔던 무거운 살인의 죄책감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섰습니다. 또한 다윗도 간음을 했다는 수치심 속에 살지 않고 새로 태어난 아들을 사랑하였으며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그 삶은 이전보다 더욱 성숙된 삶입니다. 그리고 더욱 발전된 삶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면 우리의 삶은 더욱 발전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 미래의 성공을 꿈꿀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미래의 충성과 성실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안식이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이루신 일임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저는 이번에 박주영의 자책골을 보면서 간절히 그가 회복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가 시험에 들지 않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악평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알다시피 그는 골을 넣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비종교인들은 그의 세레모니를 싫어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가 다시 일어나기를 바랬습니다. 다시 골을 넣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바랬습니다.
이번에 마지막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그는 정말로 천금같은 골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경기를 계속해서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보았던 장면에는 기도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염려했습니다. 그가 더이상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골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그친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면을 통해 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맨처음 기도를 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격정적으로 자신의 후련함을 포효함으로 표현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영표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나서 혼잣말로 ‘오,주여!’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방송을 통해 온 국민에게 전해졌습니다. 워낙 기독교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도 미워하겠지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은 너무나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바로 그것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나라를 이기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동일한 기도를 출전선수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수많은 슈팅 속에서 수많은 위기 속에서 우리가 결국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막아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셨기 때문임을 주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행하신 일이 기억되고 감사되며 영광돌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 1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안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보호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주님은 우리를 안아서 지키시고 붙드시며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 아기를 키우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들여 아기를 키웠는데 이 아기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생각됩니다. 이미 많이 커버린 첫째도 있지만 둘째는 더 많은 시간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까 생각해 봅니다. 커서 나쁜 사람이 될까요? 커서 예의없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될까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이 될까요? 그렇게 되도록 키우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혹 그런 자녀가 있다면 부모는 스스로 후회할 것입니다. 그렇게 키우게 된 것을 슬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키우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부모는 다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크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혹 죄가 있고 지혜가 없고 어리석어서 자녀를 키우는 일에 그렇게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여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위대한 성실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스스로 비뚤어 지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강퍅해지도록 애써서는 안됩니다. 더욱 죄를 짓도록 더욱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도록 더욱 악한 사람이 되도록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더 귀한 일들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통로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오늘도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주님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주의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악인이 다시 회개할 때 그 회개를 도와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더욱 누리도록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놀라운 승리를 바로 우리들을 통해 얻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런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다윗에게 주셨던 승리보다 더 큰 승리를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는 우리에게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만 이후에 다시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2. 사람이 주는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이루신 일임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