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화목] 48갈 5; 19-24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의 차이2Loading the player...
48갈 5; 19-24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의 차이2_5
2020. 5. 22. 금. 금요철야.
*개요: 갈라디아서 연구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말씀은 바른 복음의 결과와 다른 복음의 결과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초에 바른 복음에서 시작하지 않을 때 악한 행동이 나오고 다른 복음으로 인해서 모든 추한 것들이 나온다는 근원과 결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확실하게 분리되는 두 가지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의 분명한 근원은 진정한 복음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근원은 육체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인 다른 복음, 잘못된 복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종의 멍에를 따를 때 계속해서 육체를 따르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 결핍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행동들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악한 것들 뿐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여러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그러한 행동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러한 행동들은 그속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행동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우리들은 그 속에 육체를 따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두 번째인 성령을 따르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복음에 기인합니다. 바른 복음에서 자녀의 명분을 따를 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성령을 따르게 됩니다. 그 마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행동들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소망으로 나타납니다. 자녀로서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쁜 순종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항상 성령을 따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우리의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어느 때에는 육체의 일과 마음을 따르다가 어느 때에는 성령의 일과 열매를 따르게 됩니다. 분명히 성령의 마음과 열매를 따라 사는 것 같다가도 어느 새 다시 육체를 따라 사는 마음과 열매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두 편의 양 극단에서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늘 성령의 행동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늘 육체의 행동과 마음을 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아무리 신실해 보이고 성령으로 충만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 순간 육체의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투기와 원수를 맺는 것 등의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악해지기도 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마음과 행동이 혼재한 삶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함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바른 복음을 따라야 하고 그 속에서 성령을 사모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이 따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쪽으로 우리의 마음이 옮겨지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을 따르고자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로부터 드러나는 행동이 선한 열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탁기에서 세탁물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십시오. 세탁기 안에 들어갈 때 세탁과정을 거쳐서 깨끗해집니다. 밖에서는 온갖 오물과 더러움에 시달렸더라도 세탁기 안에만 들어오면 깨끗해지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성령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을 몸과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육체의 일은 육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과 같은 것은 분명하면서도 극단적인 육체의 일입니다. 우상 숭배, 술수, 원수맺음,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하는 것 등은 속에서부터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우상을 섬길 때 나타납니다. 때로는 자신의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도 다 한다는 합리화 속에서 더욱 악순환되고 있습니다. 원수맺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쉽게 다시는 보지 않을 철천지 원수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들도 악하지만 육체의 일들로는 계속해서 분쟁과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 행복한 것, 똑똑한 것, 부유한 것을 시기합니다. 그런 꼴을 못봅니다. 분내는 것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런 일은 비단 일반 성도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일어나고 노회에서 일어나며 총회에서 일어납니다. 이 모든 일은 결코 어디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생소하고도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내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이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사모할 수 있습니다. 세탁의 필요성을 깨달을 때에 세탁기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자신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것에 어디 성내는 것과 원수 맺는 것과 시기하는 것이 있습니까? 성령이 주시는 마음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희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결코 상황이 이러한 마음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상황 때문에 이러한 마음을 만들 수 없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런 마음과 행동은 오직 성령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따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기 때문에 가능해집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살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정과 욕심이 조금 십자가에서 떨어집니다. 그래서 더 괴롭고 힘들고 육체의 일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십자가에 더욱 붙어야 합니다. 아니 더욱 십자가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다 못박은 자들임을 한번 더 확인해야 합니다. 그 결심 속에서 성령 안에 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성령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육체의 일은 잊어버리고 오직 성령의 마음과 행동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복음으로부터 오는 모든 충만함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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