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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갈 2; 1-10 구원받은 성도들의 사명과 책임2_5
2020. 2. 7. 금. 금요철야.
*개요: [갈]2: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갈]2: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갈]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갈]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2: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갈]2: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갈]2: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갈]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전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는데 이후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로 바뀌었습니다. 말 그대로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자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분상의 변화이고 구체적인 변화는 삶과 생활에서 나타나는 변화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삶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고 생활이 바뀝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서 많은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해서 손해를 본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그것은 적응의 어려움이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갖게 되는 불이익은 아닐 것입니다. 마치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 지금 당장은 괴로움이 될 수 있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큰 유익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같은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크면 클수록 더욱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어느 누구보다도 진실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이 나타냈던 삶의 변화에 대한 것이며 그의 커다란 변화는 그가 얼마나 진실하게 주님을 믿는 자였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복음의 본질을 깨닫고 그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 노력을 했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갈]2: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갈]2: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과거에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며 잔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교회가 잘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교회를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교회를 방해하였고 핍박하였으며 조상 때부터 믿어 내려오던 유전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심하기 이전에는 말 그대로 기독교의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을 선동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인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진짜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이 180도 변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 14년이 흐른 다음 그는 여전히 변화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삶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것은 거짓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본질을 헤치고 있었습니다. “[갈]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갈]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2: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복음의 본질은 그 자발성과 자원함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악한 자였지만 믿고 난 다음에는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 변화된 모습으로 정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의 정도는 한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그렇게 형편없던 수준이었더라도 사도 바울은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가 일찍 시작한 만큼 더 높은 성숙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나쁘게 되지 않았던 만큼 훨씬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지레 포기하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사도 바울이 보여준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그대로 놀라운 영향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의 변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변화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더욱 변화되어야 하고 성숙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일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의식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제동을 걸거나 혹은 탄력을 이용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성도는 바로 그러한 복음의 본질을 전파하고 전달해야 하는 사명과 책임을 갖습니다. 바울이 이를 위해서 한 일을 보십시오. “[갈]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갈]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바울은 야고바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고 올바른 진리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복음의 전파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더 큰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유익을 몸소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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