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51골 1; 24-27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2Loading the player...
51골 1; 24-27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2_5
2019. 4. 19. 금. 금요철야.
*개요: 고난주간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을 피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제 몸 편하기를 바라는 이때에, 사도 바울은 오히려 고난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망쳐 나오는 고난의 길에 왜 그는 그 고난 받음을 자처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십시오.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바울은 어떻게 하면 좀더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 일을 위해서 그는 그 고난을 스스로 자청하여 자원하여 일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왜 이러한 신앙생활을 할까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사도 바울 자신이 말하고 있는 이 고백 속에서 발견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그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오묘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 아직 남아있는 고난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분의 고난은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본문 말씀을 좀 더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가 교회의 일군된 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골]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것은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혹은 깨닫게, 나타나게 하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의 사도됨은, 그가 사도가 됨으로써 모든 괴로움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깨닫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고통과 괴로움속에서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괴로움 속에서 무엇을 알게 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가 뒤이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비밀입니다. 괴로움을 겪어보지 않는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의 실체는 오랜 세월과 많은 세대에게 감춰졌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드러나지 않았었고 많은 세대가 이 땅에 오고 갔지만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를 믿는 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방인 중에서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이라 함은 더 이상 인종적 구별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지금까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을 유대인들은 오직 두 가지로 구별해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처럼 선택받은 민족과 선택받지 않은 모든 다른 민족인 이방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이방인들에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습을 나타내시었고 그 영광의 풍성함을 보여주셨습니다. 과거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이제는 충만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과거에 비밀이었다가 이제 완전히 풍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도들에게 과거에 비밀이었던 것을 온전히 나타내고 하시는 가장 중요한 모습은 그분이 영광의 소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가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충만히 알리시는데 그것은 그분이 영광의 소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이 되시는 이유는 그분이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들으심을 얻었고, 영광스러움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리스도의 모범이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도 이제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습니다. 그로써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을 덧입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그분이 가장 괴로울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들으심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이 지금도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녀들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는 이미 이루신 고난이 있지만 여전히 아직도 남아있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미 이루신 고난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사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고 아직 남아있는 고난은 그 모범에 따라 그를 믿는 성도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해야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일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신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된 것처럼 예수님께 순종하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에게 남아있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었고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 괴로움을 그 육체에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괴로움은 우리를 단지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당면한 괴로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신 은혜를 온전히 깨닫게 하는 도구이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계기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영광의 소망이 되심을 잊지 말고 앞으로 더욱 주님을 따라서 고난을 피하지 않고 주님의 일에 참여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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