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마] 40마 13; 47-52 천국의 제자들의 경건의무2Loading the player...
40마13; 47-52 천국의 제자들의 경건의무2_5
2019. 3. 8.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마]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새 것과 옛 것 [마]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마]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가치, 천국의 잠재력, 천국의 결실 등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천국을 설명하신 것은 천국의 단순한 한 가지 면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딱히 한가지 측면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이유는 그 나라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늘 부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님이 코끼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 부분을 만져볼 때입니다. 자기가 만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에 어느 정도 코끼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 본문말씀에서 주님은 천국의 모습을 말씀하실 때에 이전과는 또 다른 천국의 구별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인 고난과 역경 속에서 경건한 사람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 구별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이 구별되어지고 있으며 그 본질이 평가되어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4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마]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그물에는 각종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다양한 물고기들이 잡힌 것입니다. 각종 물고기는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다닐 수 있었지만 그물에 매여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물 속에서 정말 좋은 것과 못된 것이 구별되었습니다. 그물이 아니었다면 그런 구별을 하기가 어려웠겠지만 그물 속에서 오히려 좋은 것과 못된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먼 미래에 만나게 될 최후의 심판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에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만나게 되는 그물이란 바로 ‘고통과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과연 어떠한 모습을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정말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쁜 것도 알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이 당해보면 정말로 하나님을 찾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로서 편안할 때만 하나님을 찾기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모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목표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것은 그물처럼 우리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마게도냐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특별히 마게도냐로 떠난 것에 의미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밤에 마게도냐 사람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청하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소아시아로 가려는 마음을 버리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그중 한 곳인 빌립보라는 곳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가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또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하도 복음증거하는 것을 방해하길래 그에게 있던 귀신을 쫓아내는 것까지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그 여종의 주인이 더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니까 바울과 실라를 모함해서 관원들에게 신고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잡혀 매를 맞이 맞고 옥에 갇히게 된 것은 아주 안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했는데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과 사울은 그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진정한 그들이 섬기는 자가 누구이며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가 무엇인지가 나타났습니다. “[행] 16: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가장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실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들이 깊은 옥에서 발이 착고에 든든히 채워졌을 때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그저 상황이 이렇게 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뿐이지만 그들이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지극한 신뢰와 깊은 충성스러움은 바로 그 순간에 다른 모든 죄수들이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죄수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 속에서 그들의 찬양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서 기도할 수 없었고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고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괴로움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그 나라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는 동기가 됩니다. 우리가 경건을 준비하고 경건을 연습하고 경건을 목표로 하는 모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정의란 다 다릅니다. 이 사람에게 힘든 것이 저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을 수 있고, 저 사람에게는 힘든 것이 이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사를 돌보는 것이 남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괴로움이겠지만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바깥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지만 남편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든 자기에게 괴로운 것이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지없이 그물에 갇히게 됩니다. 두려움이 생깁니다. 절망이 찾아옵니다. 화가 납니다. 이렇게까지 상황을 만든 모든 사람이나 환경에 대한 미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내는 기준이 됩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어려움이란 사실 한도 끝도 없습니다. 10대에서나 20대에서나 30대에서나 그 이후 어떤 세대에서도 우리는 항상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지금 각자의 세대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어려움이 있겠지만 앞으로 겪게될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더 나이가 들게 되면서 더 생활이 발전되면서 문제는 생깁니다. 이미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이고 아직 문제가 안생겼다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 때가 바로 주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그때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경건과 모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과 모든 하나님께 대한 선한 마음을 총동원해서 그 문제속에서 주님을 의지하여 어려운 때를 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모습에 따라서 좋은 자들과 나쁜 자들로 구분되어집니다. 49,50절을 보십시오. “[마]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마] 13:50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세상 끝에 하나님이 부리시는 종들인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냅니다. 그물에 걸린 여러 물고기중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내는 것처럼, 사람들이 흔히 말세라고 말하는 세상의 끝에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슬픈 그 시기에 천사들은 더욱 두드러진 악인들을 의인들과 갈라냅니다. 의인들을 찾아보기 보다 악인들을 찾아보기가 더 쉬워진 그 때에 무정하며 무자비하고 강퍅하고 자기중심적인 그 악인들을 구별해서 그들을 풀무 불에 넣어 심판을 받게 합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았다고 해서 심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 나라를 구하고 세상 나라와 짝하고 세상 나라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분명히 아시고 그들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알고 있기에 그분을 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분을 존중하고 섬기면서 주님을 따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경건을 쌓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를 하나님 백성 삼으심에 감사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고자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 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마]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 모든 천국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잘 깨달았다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서기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서기관은 바로 지금까지 이 천국의 비유를 들었던 제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천국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전문가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서기관은 사실 성경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에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은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보물곳간에서 나오는 것들이었습니다. 전부 다 소중한 것이고 그것을 내어오면서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자들이 바로 천국의 제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경건 속에서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하려고 하는 이유는 절대 우리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의지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경건하십시오. 기도하시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예배를 드리고 신앙의 교제를 나누십시오. 절제되고 구별된 삶을 사십시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목표로 살아나가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그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현재의 이 세대에서 바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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