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은 마태를 만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마태와 같은 세리를 만나는 예수님이 마음에 안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마태와 같은 세리는 죄인과 동격이었습니다. 세리는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에 대해서 그들이 보이는 태도는 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따돌리고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죄인들에게 나아가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협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예수님 세리 마태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그럴 때 다른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께 앉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모습을 비판했지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바리새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죄인들은 멀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히 죄인에 해당하는 요주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한 격리 정책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생각이 잘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관점을 통해 우리들은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알지 못했던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두 가지의 가르침을 보여주십니다. 첫 번째는 죄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의 변화를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시각의 변화에 대한 가르침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에 대해서 우리가 멀리 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십니다.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멀리할 자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가까이 해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병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두려움 속에서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병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멀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아가는 이유는 예수님이 의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시각의 변화, 마음의 변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죄인들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의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의원을 그들에게 소개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의원입니다. 생명의 의원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의원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죄인에게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두 번째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의 변화입니다. 또 세리인 마태는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러운 자였습니다. 그리고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를 그렇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자요 의원이 필요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아가셔서 부르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렇게 의원이 필요한 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자들은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문제와 상관없이 오히려 더욱 귀한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가 죄인에서 종으로 바뀔 때 그 근원은 오직 하나님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겉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건강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썩어 있고 병든 자임을 간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겉모습이 어떠할 지라도 그 병자 됨을 바라보고 의원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새로운 태도의 변화입니다.
마태에게 필요한 것은 의원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제 의원이신 예수님이 마태와 같은 죄인들에게 필요합니다. 병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이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증거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받고 구원을 얻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자들을 만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