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46고전 15; 50-58 헛되지 않은 수고2Loading the player...
46고전 15; 50-58 헛되지 않은 수고2_5
2017. 11. 24. 금.금요철야.
*개요: 고린도전서 연구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다 변화되리니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지금 우리가 읽은 부분은 전체 고린도전서 15장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미 모든 필요한 부활에 관한 설명들을 다 끝낸 상태입니다. 그래서 50절말씀에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다시 말해서 이 뜻은 ‘형제들아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바와 같이’라는 뜻으로 바울의 부활에 관한 설명들이 결론지어지는 것입니다. 이전에 언급된 부활에 관한 바울의 설명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첫 번째, 부활의 구별성. 두 번째, 부활의 확장성. 세 번째, 부활의 동일성입니다. 이를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부활은 씨앗부터 다른 확실하게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직접 목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활은 확장됩니다. 부활은 처음과 나중에 놀랍게 달라지는 변화를 이룹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를 믿고 고난을 자처하는 자들의 소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내세를 믿는 자들의 위로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미래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후회없는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부활은 예수님과 동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혈과 육의 새로운 변화는 우리가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움은 아담이 처음 창조된 것에 비할 수 없는 예수님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의 기쁨과 환희가 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바울이 지금까지 말했던 내용의 개략입니다. 부활에 대한 바울의 논조는 구체적이며 확증적이고 설득적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설명을 통해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라는 획기적이고 전격적인 변화의 기점을 중심으로 연속되는 것과 연속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설명하는 혈과 육의 지속성과 한계성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는 수직선상의 좌측과 우측에 놓여있는 두 가지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좌측에는 혈과 육이 있고, 우측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유업이 있습니다. 이 혈과 육은 유한한 것이며 썩는 것인데 반해 유업은 영원한 것이며 썩지 않는 것입니다. 혈과 육,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들입니다. 혈과 육은 썩는 것이며 한계가 있고 어느 한도까지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썩지 않고 무한하며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적인 차이는 절대 어떠한 방법으로도 극복될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가면 혈과 육은 다 끝이 나게 됩니다. 모든 세상적인 것들은 전부 종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존재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세우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 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전에 혈과 육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혹은 상급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썩어질 혈과 육의 모습으로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를 상급으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혈과 육은 그 자체의 한계에 따라 폐기되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은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비밀’을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 놀라운 비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을 위해 마련해 두신 가장 귀하고 놀라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그대로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는 ‘부활’의 개념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됩니다. 그것은 ‘변화’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변화’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엇에서 무엇으로의 변화입니까? 무엇이 변한다는 것입니까? 그 해답은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에 있습니다. 썩는 것에서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의 변화입니다. 유한에서 무한으로의 변화입니다. 이제 앞으로 당면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미리 준비된 영원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거친 뒤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며, 그 곳에 거하게 될 것이고, 주님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앞으로 있게 될 하나님 나라에서의 많은 경험들을 감당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없이는 결코 지금 말씀드린 하나님 나라에서의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변화에 대해 바울은 구체적으로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나팔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일어나는 첫 번째 일, 바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그 시각에 살아있는 주의 성도들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변화한다는 것은 이전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의 가지고 있는 혈과 육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입는 것입니다. 결코 썩지 않음을 입는 것입니다.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전의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더욱 입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부활의 변화란 바로 새로운 것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부활이란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더욱 더 강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부활은 더욱 더 충만해지고 무한해지면서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한 몸의 영광스러움과 그 화려한 광채를... 이전의 썩어지고 부패하는 몸이 아니라 결코 썩어지지 않고 완전한 모습으로 변하여 우리에게 나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가지고 있던 몸의 기억과 과거의 기억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새롭고 더욱 강력해진 부활체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완전한 입음이며,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거룩케 됨이며 영광스러워짐입니다.
썩지 않게 된다는 것, 그리고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은 부활체의 특징입니다. 이전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던 만물의 부패법칙은 부활체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부패법칙의 가장 궁극적인 종착지인 ‘사망’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망은 부활에 의해 삼킨바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사망을 삼켜 버리고, 사망을 이기고, 사망하지 않는 죽음이 없는 새로운 상태를 만들어 냅니다. 이로써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말씀에 따라 선언할 수 있게 됩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은 더이상 이기는 것이 없습니다. 사망은 더 이상 세상 만물에 대해 왕노릇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피조물에 군림하여 그들을 두렵게 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사망은 더이상 이기지 못하고 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사망이란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사망이란 ‘죄’로 말미암는 것이었습니다. 사망은 죄로 인해 물든 세상의 사악함과 패역함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쏘는 것은 ‘죄’였습니다. 죄때문에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라는 개념은 율법에서 생겨났습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죄가 아닌지를 가려주는 시금석과 같은 것입니다. 율법에 금하고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죄이며 율법에 따르는 것이 선입니다. 죄를 죄로 선포하는 것이 바로 율법의 역할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죄의 권능이 되는 것입니다. 죄로 하여금 스스로를 정당케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사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이 쏘는 것은 죄였는데, 죄가 모두 사함받았기 때문입니다. 죄는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부활체의 앞에서 죄의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죄는 그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인데, 율법은 더 이상 그리스도 앞에서 존속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율법을 종결시키셨습니다. 율법의 효력은 그리스도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는 복음의 능력 앞에서 완전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권능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제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다음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고전]15:57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렇습니다. 바로 부활을 가능케 하고 사망을 종결시키며 죄의 권세를 무산시켜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죄에서 이김을 얻었고, 사망에서 이김을 얻었고, 새로운 생명, 완전한 생명, 부활체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러한 부활체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죄없다 하시고 의롭다 하시기 위해 그분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감당하는 분이 되셨고, 그분으로 인해 죄의 값이 치루어졌고 우리는 그분이 치루신 죄의 값으로 인해 더 이상 죄인의 신분이 아니라, 무죄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바로 무죄한 신분으로 변화된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인하여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은 단지 말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주신다고 하셨고, 그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고자 우리를 죽지 않을 의로운 몸, 부활체의 몸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를 죽을 혈과 육으로 그냥 버려두시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구원의 후사, 구원의 상속자로 만드신 하나님을 우리는 찬송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활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부활은 이렇듯 영광스럽고 감사하고 놀랍고 신비한 것입니다. 부활은 단지 죽은 자의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대속과 부활과 승천의 완전한 표현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이 세상에 거하는 주님의 자녀로서 희망을 잃지 않고 낙심하지 늘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부활에 관한 권면을 들어보십시오. “[고전]15:58 그러므로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 깨달으십시오. 부활이 있기 때문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이란 새로운 시작입니다. 현재와 과거에 근거한 새로운 시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바라보고 하는 모든 수고는 주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수고가 하나님 안에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에게 바로 이 사도 바울의 권면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권면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서 우리가 깨어 늘 주의 일에 수고하고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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