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고전] 46고전 15; 1-11 나에게 나타나신 예수님2
46고전 15; 1-11 나에게 나타나신 예수님2_5
2017. 10. 27. 금.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전서 연구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것이라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자니라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시작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자마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어떻게 가능할까, 혹은 어떤 원리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 자체를 궁금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치나 원리를 깨닫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살아나신 예수님의 실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나신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가족들에게가 아니라 가장 먼저 그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예수님의 부활의 경험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먼저 게바에게, 그 다음 열 두 제자에게, 그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공관복음에서 부활의 경험에 있어서 순서 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바에서 열 두 제자에게서 그리고 오백여 형제에게서 점층적으로 나타나는 부활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은 예수님의 부모와 형제와 친족이 아니라 수제자와 제자들과 형제들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은 한 인간으로서 다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으로서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경험 자체가 제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부활의 경험 순서가 그들에게 얼마나 의미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맨 마지막에 부활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맨 처음에 경험하였습니다. 들어서 안 것이 아니라 보고서 알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형제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부활을 이루신 예수님의 모습과 그 예수님을 만났다는 개인적인 경험이 그들을 예수님의 놀라운 증인들로 만든 것입니다.
그때가 서기 33년도 정도였으니까 그 당대에는 대단했겠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 사건 자체도 희미해질 것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그 놀라웠던 일도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 버리고 기억도 희미해지다 보면 결국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부활도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직 제자들과 형제들에게만 나타나셨다면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셔서 사람들을 만나시는 것은 그 이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7절에서 9절은 예수님이 그 이후에도 사람들을 계속 만나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좀 특별했습니다. “[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7절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를 의미합니다. 이 야고보는 원래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활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난 다음에 열심있는 신앙인이 되어서 예루살렘 교회의 큰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후에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경험을 해야 믿음을 붙들수 있는 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중의 작은 자인 바울을 만나셨습니다. 그는 심지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세번 부인하였던 베드로를 만나주신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핍박하기도 한 바울도 만나주셨습니다. 그러한 만남은 바울이 가장 작은 자라고 스스로를 겸손히 여기면서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온전히 예수님을 만났고 그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던 야고보도,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하였던 바울도 만나주셨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만나주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죄인이라서 주님은 더욱 만나주셨습니다. 그러한 사랑이 주님을 만난 자들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도 나타나십니다. 단지 과거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을 만났다는 것은 또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현재적인 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주님을 만날 것이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주님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만나는지 모를 것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이 바로 나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나는 주님을 만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본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난 자들이 눈으로만 봤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사도 바울은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예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부활 후 예수님을 보았던 마리아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보기는 했지만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보는 것이 그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때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보고 지나치는 것은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 깨달아서 그분을 따르는 것이 정말 만난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말해주었을 때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들이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깨닫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있다는 것, 주님을 믿고 있다는 것, 그것이 주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과 헤어졌을 것입니다. 주님과 만나고 있거나 헤어져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주 현재적인 의미로 우리는 지금 주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을 만나고 있는 한 우리는 주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저런 신앙생활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믿음도 커지고 주님과의 만남도 깊어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난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도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계속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서 행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계속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성례자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 성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만나면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영생을 향해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영원토록 함께 만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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