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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 1; 26-31 우리를 부르심의 가치2_5
2017. 5. 19. 금.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전서 연구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너무나 부족한 자들임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부끄러움이나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자각은 어떻게 그렇게 높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낮은 자를 불러 주셨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높으심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당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한없이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처럼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을 구원해 주셨을까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정말 부르심을 보았을 때에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않으며 능력있는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말이 좀 의아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지혜있지 않은가? 능력있지 않은가? 문벌도 좋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라는 이 표현을 보십시오. 헬라어로는 ‘κατὰ σάρκα’이고, 영어로는 ‘by human nature’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적 기준으로는 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지혜있는자, 능한 자,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떨까요? 세상에는 지혜있는 자, 능력있는 자, 문벌좋은 자가 너무 많습입니다. 우리끼리는 지혜가 좀 있고 능력도 되고 문벌도 괜찮을 지 몰라도 세상과 비교해보면 믿는 사람들은 많이 부족합니다. 세상엔 박사도 많고 능력자도 많고 재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고 문벌도 없는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저절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을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확인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는 별볼일 없는 양치는 목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부족한 자를 들어서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다른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주님은 모세같은 부족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모세가 바로의 아들일 때 부르시지 않고 연약해졌을 때 부르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해서 잘 나갈 때 부르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지혜가 사라지고 능력이 사라지고 문벌이 사라졌을 때 그 때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정말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다윗을 부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골리앗을 무찌르고 사람들을 이끌고 사울왕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리더쉽을 발휘할 때 주님은 그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 추대되기 직전에 기름부으신 것도 아닙니다. 그가 기름 부으심을 받고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던 때는 아무 것도 없던 한낱 목자에 불과했던 때입니다. 그와 같이 베드로가 부르심을 받았고 바울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고 문벌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고, 문벌이 있다가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지혜가 사라집니다. 능력도 사라지고 문벌도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혜와 능력과 문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사라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스스로의생각과 판단과 결정은 많이 제한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없고 능력없고 문벌없음은 우리의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같은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고 그 예수님은 나같은 자를 위해서 죽으셔서 죄를 다 사해 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우리 마음에 주님의 부르심을 순종하고 따를 수 있도록 순전한 믿음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한 자들인가에 좌지우지되시지 않으십니다.
이제, 그 부르심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편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이토록 미련하고 무능력하며 보잘 것 없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러주신 그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시고 위대하신 분이신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 부르심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사랑받을 만한 자를 사랑하시고, 도움받을 만한 자를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수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도와줄 수 없는 자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더욱 드러냅니다. 우리가 지혜롭지 않고, 능력이 없고, 문벌도 안좋으면 안좋을 수록 그런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은 더욱 더 위대하고 놀라우십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우리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머리도 돌아가고 제법 기술도 있으며 배경도 괜찮은 사람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은 이전에 없던 일을 이루십니다.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한 부르심은 결국 인간의 지혜를 무색하게 하며 인간의 능력을 별볼일 없게 만들고 인간의 배경이라는 것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만을 자랑하게 될까요? 바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모든 놀라운 일들을 이루신 것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주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가치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은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시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보십시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오셔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예수님을 닮아가셔서 그분의 지혜가 우리의 지혜가 되고, 그분의 의로움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고, 그분의 거룩함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고, 그분의 구원하심이 바로 우리의 구원받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 귀한 부르심의 의미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 부르심을 진실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생각하면 그 부르심을 잘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속에 주님의 형상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지혜없고 능력없고 문벌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혜있고 능력있고 문벌있게 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강하심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에 대한 부르심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랬다면 식인종들은 그냥 선교사를 잡아먹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면 달라집니다. 결국 그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따를 때 하나님 편에 가까와지게 되기 됩니다. 신앙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가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을 따를 때 우리는 지혜로워지고 능력있게 되며 문벌이 좋아지게 됩니다. 우리와 우리 가족이 귀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고전]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씀처럼 결국, 지혜 없어도 혹은 지혜가 있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능력도 문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문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자랑하고 우리가 주님의 자랑이 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가치와 열매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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