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 예수님은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게 되는 17장은 특별히 중요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3절은 영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일까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알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지식들은 아는 것이 완성되기도 하고 포기되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은 결코 포기되지도 않고 완성되지도 않는 앎입니다.
2. 그 아는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앞 뒤로 반복해서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단지 어떤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께서 2절 후반절을 중심으로 앞 뒤에서 행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1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한 5절에서도 반복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생의 의미인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때문에 그분의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롭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영화롭게 하기를 위해 노력하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아는 것이란 예수님처럼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생을 원할 때 행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의 모범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4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하라고 받은 일을 이루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이루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있어서 노력하고 애를 쓰는 것은 그것이 비록 사람들을 불편하게는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는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축복만을 이야기해서 사람들을 즐겁게는 할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는 우리가 맡은 일과 우리가 해야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함임을 깨닫고 이를 위해서 더욱 노력하는 자들이 됩시다.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성장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맛에는 자극적인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성장에 안좋아도 말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욱 우리가 해야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에게처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2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럴 때 누군가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함께 읽은 뒤에 마치겠습니다. 우리에게 더욱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마음이 넘쳐서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