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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히 2; 1-9 그리스도께서죽음을 경험하심2_5
2016.5.27.금.금요철야
*개요: 히브리서 연구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증언하셨느니라 구원의 창시자 [히]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히]2: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그를 돌보시나이까 [히]2: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히]2: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할 때에 대개 생각하게 되는것은 '그분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이 세상에서 겪으셔야 했던 모든 고통은 그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는가를 생각하게만듭니다. 그것은 성경 여러곳에서 증거되고 있는 배신당함과 채찍에 맞으심과 창에 찔리심과 못에 박히심과그리고 숨이 끊어지심에 관한 것들입니다. 또한 좀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이세상에서 30살까지의 사생애와 3년간의 공생애 동안 겪으셔야 했던 모든 불편함과여러 가지 힘든 환경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고난에 대한 묵상은 단지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묵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으로서 오심에만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더욱 더 확장되어야 합니다. 더욱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어디까지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로 올라가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이와 같은 매우 확장된 범위에까지 우리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시기 이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이 겪으셔야 했던 고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가 원래 살고 있던 평화롭고 만족스런 삶의 환경에서 매우 열악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속으로 들어가게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예를 들어 50평짜리집에 살다가 10평짜리 집에 살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이 되겠습니까? 300만원 수입으로 살다가 50만원 수입으로 살아야만 하게 되었다면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깨끗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 살다가 더럽고 추하며 복잡하고 혼탁한 환경속에서살게 된다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겠습니까? 원래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살아간다는 것이그렇게 힘이 드는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약간은 불편하지만 애초부터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면 자연스럽게그 한계와 고통에 적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삶을 헤쳐나간다는 것은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는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바닥의 삶을 겪어 보지않은 사람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분의 인생은 날때부터였지만, 그분은 이미 태초이전부터 계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세계의 모든 창조에 동참하셨고 세계가 그로 말미암아 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창조자로 신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세계를 다스리시던 그분의위치와 존재와 영광과 능력과 권세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버리시고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려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은 낮아지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낮아지심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들보다 잠간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9절) 주님의 신분이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인간의 몸을 입고 나셔야 했던 예수님을 뜻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었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던상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몸을 입기 이전의 삶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생활이 당연하지만, 예수님께는 그 자체가 힘든 일이고 괴로운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고난의 절정은 바로 그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으로 33년의 삶을 사시다가 마지막에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던 그 마지막의 순간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고난의 최고 절정을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순간을 일컬어 말하기를, '죽음을맛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죽음을 맛보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guomai'라고 합니다. 이는 맛을 보아 알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직접 체험을 통해서 그 고통이 어느정도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신 것이 이런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셨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친히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가장 끔찍하고 괴로운 고통의 절정이었습니다.
간혹 사람들 중에는 기근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의 괴로움을알기 위해 몇일간 그 지역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전쟁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는자들의 비참함을 느끼기 위해 그 전쟁터에 직접 뛰어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고통이 무엇인지를알기 위해 직접 죽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직접 죽으심으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셨습니다. 그분이원래 신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죽으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이기 때문에 더욱 죽으신다는 것은 훨씬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일을 친히 행하셨습니다. 그리고죽음을 맛보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일을 행하셨습니까? 바로모든 사람을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인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이 한마디에 다 농축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맛보심'에 그분의 낮아지심과 애매히 고통 당하심과 대신죽으심의 모든 슬픔이 다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땀과 눈물과 피는 그분 스스로의 죄나 잘못으로 인해 겪으신 것이아니라 순전히 우리때문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겪으신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은혜를기억하며 그 고난을 기억하고 마음속으로 모든 일을 감당하셨던 예수님을 묵상하는 고난주간을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중에 '물에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가 물에 빠졌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물에 뛰어 들어오셨습니다. 이 물은 매우 더럽고 진흙탕이며 조금도 견디기 어려운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밖에 옷을 버리거나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시는 상태에 계시지 않고 기꺼이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서 우리가 있는 물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인생의 모든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흙구덩이 에서 건져내시기 위해서 스스로를희생하셔서 우리에게 발판이 되어 주셨고 우리는 그분을 밟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그 진흙구덩이를 빠져 나왔고, 우리 주님도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스스로를 죽음에 던지셨던 그 고난의 순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구원의 기쁨은 잠시요 이젠 그 이후의 삶을책임지라는 식의 보따리 내놓으라는 마음을 가진 자가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주님께서는 구해만 놓고 그리고내버려 두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하나님께만 떼를 쓴다면 그것은 올바른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삶속에서 더욱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죽음을 맛보아 아셨던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갖는 성도들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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