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1. 우리는 믿음의 은혜를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고 믿음에 따른 행위에 치중하다보면 이러한 이신칭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의롭게 되고자 한다면 행위의 공덕을 쌓아야만 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받는 은혜임을 말씀을 통해서 반복해서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출발점은 믿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동일한 것임을
늘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탈때 항상 우리는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뭔가를 돌려야 올라가는 법은 없습니다. 힘들게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내 힘이 아니라 기계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에게 그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그 능력이 있습니다.
2.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주님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까요? 그 원리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은 날 때부터 죄악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죄를 짓기 때문에 도저히 행위로서 의로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죄인과 심판자의 관계였습니다. 둘은 도저히
화목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을 정죄할 수 밖에 없었고, 인간은 스스로의 죄악성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도저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의 관계를 하나님은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마침내 스스로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면서 죄인인 인간들을 구원하실 방법을
준비하셨는데, 그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을 통한 의롭게 함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 나타나는
제사의 종류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그것인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
다섯 가지의 제사의 의미를 모두 갖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화목제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제 또는 Fellowship offering이라고 불리는 화목제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서 화목제사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이 제사에 제물은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그 사랑하시는 아들이 되셨습니다. 이 아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단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희생시키심으로 자신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게 만드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 희생 제사에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인간과 화목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스스로의 의로움을 지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의로운 자들로 인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은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 화목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3. 의롭게 되는 데에는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을 종으로 써달라고 말할 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다시 아들이 되기 위해서 이것 저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우스꽝스럽습니까? 필요한 제물은 아버지가
준비하셨고 아들은 그저 그 아버지의 은혜를 받기만 하면 됩니다. 갚으려고 하지 말고 받으려고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에는 그 어떠한 행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제물이나 희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되심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됨이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하셨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행위의 삶을 부인하고 믿음의 삶을 고백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요? 말씀대로 사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의롭게 여기심을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일인 것 뿐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의로움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는 자로서, 그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따른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구원얻고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지 않고 도리어 굳게 세우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만을 사모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일들을 깨닫게 만듭니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은 자로서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
말씀을 통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 은혜를 늘
누리는 자들이 됩시다. 늘 값없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이 됩시다.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늘 사랑하는 자들이 됩시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