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 12왕하10;18-31 예후가 멸한 우상들2Loading the player...
12왕하10;18-31 예후가 멸한 우상들2_4
2019. 11. 13. 수. 수요예배.
*개요: 열왕기상 연구, [왕하]10: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왕하]10: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왕하]10: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왕하]10: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왕하]10: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왕하]10: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왕하]10: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예후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일은 아합과 이세벨의 집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사울왕은 아말렉 족속을 다 물리치라는 명령을 어기고 아각왕을 살려두었다가 커다란 죄를 지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후는 사울왕과는 달리 그러한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서 시키신대로 아합과 이세벨의 집을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합과 이세벨이 죽였던 여호와의 종들과 그 선지자들의 피를 갚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행했던 모든 악행에 대해서 벌을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왕을 죽이고 어머니 이세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아들 칠십인을 모두 죽였습니다. 또 아합에게 속한 자들과 그와 친했던 사람들을 처단했습니다. 정말 말그대로 아합의 집을 무너뜨려 버렸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후는 아합과 이세벨이 그렇게 섬겼던 바알신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바알신께 제사하고자 한다고 하고서 모든 바알신과 관계된 자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번에 그 모든 사람들을 다 죽였고 바알의 당을 훼파하였으며 파괴하였습니다. 이렇게 행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후를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후에게 복을 내리셔서 그 모든 충성스러웠던 일로 인해서 자손 4대에 이르는 왕위의 계승과 축복의 전수를 약속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로 예후는 하나님의 세우시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예후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였습니다. 왜 그는 온전하게 충성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아합과 이세벨을 무찌르고 더 나아가서 바알신을 훼파했던 것처럼 금송아지를 이겨내지 못했을까요? 왜 그래서 4대를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 4대 동안은 하사엘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그 아들 벤하닷에게도 계속해서 공격을 받아서 학대를 받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예후의 그 온전하지 못함과 더 나아가서 축복은 받지만 축복과 함께 형벌도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히 한 일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죄를 지은 일에 대해서는 그 값을 치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대해서 동일하게 죄값을 치루어 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했던 모든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서 동일하게 악하게 했던 것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처벌하신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두리뭉실 함께 뭉쳐서 지나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것이 있었다고 해서 나쁜 일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나쁜 것은 좋은 것 속에서 끊임없이 악영향을 미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정말 100% 진실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바알도 거부하고 또한 우리가 빠질 수 있는 금송아지도 거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예후가 빠졌던 금송아지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왕하]10:29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어구는 '여로보암의 죄'라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란 사실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여로보암을 따르고 있으니 자연히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도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따른다면 동시에 누구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까? 이 질문은 우리가 하나님께 100% 의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혹시 가족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편을 따르고, 아내를 따르고, 아들을 따르고, 딸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친구나 친척이나 다른 아는 사람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행하는 그 누군가의 행동에 양심이 거리끼면서도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바로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앞에 가는 사람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뒤따라 가는 사람들은 다 그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반면 앞에 가는 사람이 방향을 잘 잡으면 뒤따라 가는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입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예후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자들이 되기로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누군가에게 뭔가 잘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못하는 일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느끼는 실망과 아쉬움은 더 큰 법입니다. 빨리 그 잘못하는 일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온전한 신뢰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겠습니다. 잘하기도 하지만 못하는 것이 계속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복을 주시면서도 화도 함께 내리십니다. 우리를 연단하시는 고난은 인내하고 나면 오히려 더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어려움은 그 원인을 깨달을 때까지 계속 진행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만 온전히 충성하고 다른 것을 더 사랑하거나 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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