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삿] 7삿 11; 34-40 서원을 지키는 것의 의미2Loading the player...
7삿 11; 34-40 서원을 지키는 것의 의미2_4
2018. 4. 25. 수. 수요예배
*개요: 사사기 연구 [삿]11: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삿]11: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삿]11: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삿]11: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삿]11: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삿]11: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삿]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입다의 잘못된 서원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자기 중심적이었고 이기적이었으며 타인을 자신의 승리의 담보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들으심으로 승리를 거두기는 하였지만 그 승리는 슬픔이었고 괴로움이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번제로 바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삿]11: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이런 경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이전에 행했던 악한 서원을 무효로 할 수는 없을까요?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만약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요구되어져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음 번에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 패망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실하다면 분명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서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서원은 하나님의 행하심에 그 분명한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어떻게 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행하심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에서는 이 일을 하나님이 승인치 않으시는 근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삿]11: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입다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바랄 수 없을 때에 얻었던 것이고 크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약속의 실천이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대해 신실함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대해서 커다란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셨는데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기를 요구하심으로 지속됩니다. 지금은 승리를 통해서 평화를 누리게 되었지만 다시 암몬 자손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도움을 주시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약속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것은 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입다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기 딸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딸과 입다는 각각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지켰습니다. “[삿]11: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삿]11: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어려움 중에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그것을 받은 다음에 우리는 입을 싹 씻어 버립니까? 서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뭔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삶에 무슨 보답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서원은 서원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인간사이의 관계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받기만 바라고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다시 돌아올 뿐입니다. 다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받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을 드려야 할 지를 고민해 보십시오. 안 드려서 그렇게 드리고자 한다면 드릴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욱 성장하게 되는 법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 서원이 있었고 그 서원을 행하였습니다. “[행]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이렇게 자신의 서원을 온전히 행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복음 전파의 확고한 기틀이 세워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그것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받은 것만을 생각해도 그러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또한 그냥 받기만 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더 많은 것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받고 드리면서 계속되는 관계 속에서 더 깊은 관계를 하나님과 맺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