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삿] 7삿 1; 27-36 은밀히 들어와 자리잡는 죄악2Loading the player...
7삿 1; 27-36 은밀히 들어와 자리잡는 죄악2_4
2017. 12. 20. 수. 수요예배
*개요: 사사기 연구 [삿]1: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삿]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삿]1: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삿]1: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삿]1: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삿]1: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삿]1: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삿]1: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삿]1: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삿]1: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오늘 말씀에서는 각 지파들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땅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파에서 그 일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은 '그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므낫세는 그 거민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에브라임도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스불론 지파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아셀지파와 납달리지파도 사정은 매한가지 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는 못했는데 사역은 시켰습니다. 가나안 거민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 그들중에 함께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좋은 징조요 그나마 괜찮은 것이라면 어느 정도 위안은 될 듯합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를 않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삿]1: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삿]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나중에는 아예 스스로 쫓아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달려서 못쫓아 내었는데 나중에는 쫓아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혹은 의도적으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편에서 가나안 거민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나면 더욱 황당한 일까지도 일어납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삿]1: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삿]1: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사람들은 단 자손을 쫓아낸 후에 아예 그 자리에 머물러 버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의 수중에 가나안 지경이 다 넘어온 상태였지만 그 중에서 아모리 사람들은 자기 구역 안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아예 몰아내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영역이 생겨버렸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삿]1:36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전쟁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얼마나 죄악이 우리의 삶속에 교묘히 침투해 들어 올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죄악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그 가운데 있던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우리에게로 들어옵니다. 이와 동일한 패턴과 방식을 우리의 삶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완전한 승리안에서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악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고 우리는 온전히 승리하신 그분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우리는 완전히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는 남은 전투가 있습니다. 소규모로 지역 지역에서 조그마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죄악과의 싸움입니다. 처음에 전쟁에 승리한 것으로 모든 잔당들이 다 사라지리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입니다. 그 잔당들은 우리가 무찔러야만 합니다. 주님은 그럴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남은 싸움이 자꾸만 밀렸습니다. 죄악과의 싸움에서 하나 둘씩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나중에는 그 죄악이 그냥 자리잡았습니다. 우리 속에서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습관적이며 일상적인 죄악이 우리 속에 그대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죄악은 우리가 별로 싸워 이겨내어 내보내고 싶은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죄악은 우리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만족시켜 주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요긴하게 쓰이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하물며 내보내고 끊어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죄악은 그냥 우리 자신에게 붙어있는 것 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죄악은 계속 성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합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우리를 망가뜨립니다. 바로 그것이 죄악의 목표였습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그 땅 거민을 그냥 용납해 버림으로 얼마나 큰 화와 재앙을 받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거민을 용납하는 것이고, 나중에는 나가지 말라고 한 것이고, 더 나중에는 제발 함께 있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본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용납하고 쉽게 굴복해 버리는 죄악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그 죄악의 습관을 버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로 인해서 결국에는 내 자신을 파멸로 인도하게 만드는 그 죄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죄악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불의 원인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 불의 영향력만 축소하려는 것은 파국을 불러옵니다. 더군다나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돌발적으로 죄의 댓가는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배웁니다. 그 죄악은 우리가 죄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강한 결심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을 때에 죄악에 우리 스스로를 제물로 내어주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도구들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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