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욥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끝까지 견디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주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어 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완전하게 모든 것을 잘 통과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대해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잘 견딘 것에는 인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절반의 성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승리한 것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바로 이것이 야고보서 5장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이러한 주님의 자비함과 긍휼함이 없었더라면 욥이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뜻은 욥기서에서
우리가 두 번째로 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그것은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성도들을 섭리하시고 다스리신다.
우리는 여기서 왜 욥이 이러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도 주셨으니 나쁜 것도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격동케 함에도 꿋꿋이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그를 넘어뜨린 것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다음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아왔다면
하나님은 내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는 날마다 자신의 삶을 저주해야 했고 자신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날마다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그속에서 그가 했던 말은 무익한 말이었고 헛된 말이었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는 어리석은
말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섭리과 다스리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시작은 38장 1절부터 나타납니다.
"38: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38: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8: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몰랐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며
다스리신 하나님의 깊은 계획과 의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의 생사화복이 있고 부침(浮沈)과 생멸(生滅)이 반복됩니다. 그러한
일들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공의의 분명한 원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의 위엄과 호령에 놀라 스스로의 음성을 낮추며 겸비하였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4,5절에서처럼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분명한 깨달음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 깨달음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께 대해 노함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노함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계십니다. 10절부터 14절입니다.
"40:10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40:11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40:12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40:13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지니라
40: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하나님은 욥에게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악인에게 벌을 내려보라고 하십니다. 그 악인을 찾아내어 낮추며 밟아서 묻고 그 죄에 상응한 심판을 내려보라고 하십니다. 과연 이일이 욥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래서 그 자신은 의로운 심판자였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나만도 못한 주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것이 욥이 그동안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8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주님의 심판이 잘못되었으니 폐하여 져야 한다고 했고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여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불합리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하시는 선하신 뜻을
보이신다.
그렇지만 만약 그 자신이 세상 심판자라고 하더라도 그는 온전하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 위치에 앉았을 때에 그는 자신의 자녀의 불의함을 볼 것입니다. 자신의 종들의 악함을 볼 것입니다. 자신이 모은 재물이
남에게 미움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 자신 역시 악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전한
심판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은 사람과 다릅니다. 홀로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실 뿐만 아니라 가장 지혜로우시며 공의로우십니다. 그분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은혜베푸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입니다. 그 때문에 이 세상은
아직도 멸망되지 않고 존재하고 있으며 저와 여러분이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 인류역사상 매번 위태위태한 순간마다 왜 더 끔찍하고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번번이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모두 주님이 세상의 악을 저지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을 내세우고 주님의 심판을 페하려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의로우신 심판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악이 그러한 재앙을 불러일으켰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악인일찌라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자.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입니까? 순종하는
자입니까?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악함과 헛된 의를 가지고 하나님과
다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섭리하심의 평안이 넘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