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고후] 47고후 12; 16-21 모든 권면과 교훈의 목적2Loading the player...
47고후 12; 16-21 모든 권면과 교훈의 목적2_5
2018. 6. 8. 금.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후서. [고후]12: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고후]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고후]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고후]12: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고후]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고후]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의 종반이 다가오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목적이나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도들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살펴보는 목적은 단지 성경을 알게 되는 변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온전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은혜의 수단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많이 있고 신앙서적도 많습니다. 유명한 설교자들도 많습니다. 각종 성경공부와 프로그램과 행사와 활동 등이 있습니다. 서점에 가서 기독교 코너를 가보십시오. 신간서적코너는 늘 새로 나오는 책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책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서 이런 책들이 나온 것일까? 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그것은 내 자신에게도 항상 필요한 문제입니다. 책을 읽고 묵상을 하며 사역을 하는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 행하는 것일까요? 그 목표를 잃어버린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하고 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살펴보기 전에는 저도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목적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의 목적은 자신을 변명함이고 다른 목적은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은 오직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고후]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고후]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고후]12: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그렇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차이였습니다. 어떤 책은 순전히 자신을 자랑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혹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만 합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참 그렇게 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바로 덕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은 꼭 전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이와 같은 목적이 필요합니다. 모든 영적 성장의 방편들을 통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변명하려고만 합니까, 아니면 자신의 덕을 더욱 세우려고 합니까?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아무리 성경공부를 해도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조금도 변화없이 그저 자신을 변명하려고만 한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덕을 더욱 세우려고 한다면 그리 큰 은혜가 아니라도 놀랍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변화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조금의 은혜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워야 하는 덕은 이후에 계속 나열됩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을 버리는 것이 덕입니다.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행한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에 부지불식간에 참여하였음을 회개하는 것이 바로 덕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목표로 할 때 그 목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목표의 성취에 대한 구체적인 마음가짐을 보십시오. “[고후]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고후]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우리는 모든 신앙생활과 권면과 교훈 속에서 이러한 부끄러움과 악함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올림픽에 나오는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메달을 따기 위해서 자기 희생을 하기도 하고 혹은 우리 나라가 메달을 따게 되기 위해서 남을 위한 희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노력 끝에 비로소 메달을 따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됩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뛰어났으나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왕상]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11: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상]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그는 아무리 지혜가 많았어도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지 않았을 때 그 모든 지혜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적 지혜가 많아도 믿음이 부족하고 소망이 연약하며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 악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따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고 깨달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은혜를 생각할 때 그 다음에는 온 힘을 다해 실천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도 덕을 세우기로 노력하고 다짐할 때 우리의 받은 은혜는 헛되지 아니하며 우리의 노력은 귀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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