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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고후] 47고후 1; 21-24 주관하는 것과 돕는 것2

 

47고후 1; 21-24 주관하는 것과 돕는 것2_5

 

2017. 12. 15.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후서 연구

[고후]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1: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고후]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성도들은 믿음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모를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에게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을 좀더 잘 따를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나쁜 일을 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기 어려운 성도들에게는 차라리 하나님의 종의말에 순종하는 것이 좀 더 구체적이고 쉬운 방법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뜻에서 시작된 성도들의 순종을 악용한 어리석은 하나님의 종들 때문에 하나님께 대해서 순종하고자하는 초기의 의도는 변질되어서 오직 주의  종에게 순종하려고 하는 안타까운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각자와 하나님의 종 자신까지도 하나님께 순종해서 모든 사람이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교역자에게 순종하고 교역자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쳐 준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원하시는 모습도 아닙니다. 성도와 교역자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새롭게 나타나야 합니다.그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이야기하는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자신을드러낼 수 있고 자신에게 순종과 복종을 강요할 수 있고 자신에게 대한 섬김과 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서 스스로의 몸을 굽혀 하나님이 나타나시도록스스로의 몸을 낮추고 있다고 합니다. 23절 입니다.

“[고후]1: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그는 하나님을 증거자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스스로를증거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의 몸을 펴서 자신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데, 바울 사도는 자신의 몸을 굽혀 하나님께 무릎을 꿇음으로써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증거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하는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원하는 바였습니다.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진정으로바울은 고린도의 교인들을 아꼈습니다. 사랑했습니다. 다시 고린도에 가서그들의 심판자가 되고 그들의 주관자가 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해 주고 싶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그 이유는 그들을 정말로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나서야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는성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달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문제를 가져와서 자신에게 매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서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 정말로 그들을 위한 일입니다.자신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유익을 발견할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주의 종들은 여기서 실족합니다. 자기가 다 해야 한다고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으로서 자신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말만 따르면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고 말합니다.그러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등지고 서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바라보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놓치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것이 정말 그 사람을 아끼는 것이며 위하는 것이며 필요한 것임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대개 성도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해주는 것이 한국 교회의 보편적인 문제 해결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방법이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더 본질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신다는것입니다.  

 

그렇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사가 성도들의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성도가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권면하는 것 뿐이지모든 문제를 목사가 다 해결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뀐다 하더라도 여전히 위해서기도해 주는 것이나 함께 기도하는 것, 기도하도록 권면하는 것은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로 하여금 진정으로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의식하게 하고 깨닫게 하고 만나게 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고후]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대신 기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함으로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막아서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각 사람의믿음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각 사람의 믿음을돕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돕습니다. 그로 인한 기쁨을 돕습니다.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런 일이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각 사람이 믿음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이라는 길로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길을 막아서면 안됩니다. 그리고 그 길에 막아서게 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믿음이라는 하나님께로 통하는 길에 서있습니다. 그 길로 나아갈 때에 때로 도움을받고, 때로 권면을 받고, 때로 부축도 받아 마침내 각자가 서야 할하나님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고후]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이미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고 우리를굳건하게 하시고 기름을 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또한 동행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자기를 위해서 모르드개와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시녀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럴 때 에스더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나아갔습니다. 그러한정성은 단순히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도를 자신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의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타났고 그 다음에 왕앞에서 어떻게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지혜를 에스더에게 주셨습니다.이와 같이 성도는 기도를 받으면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때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하며 하나님께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은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믿음을 완전히 맡겨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내 문제를 완전히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합니다.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방해물을 제거해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때로 그 장애물을 스스로 치울 수 없을 때에는 억지로라도 그 장애물을 제거해 버리십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목사님에게 실망하게 될 때가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주님을바라보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아서 우리 각자가 서있는 믿음의 길에서 더욱굳게 흔들리지 말고 주님께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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