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1. 하나님께는 사랑과 공의가 존재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중요한 두가지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생각해서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은 분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공의만 생각해서 하나님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분이라고만 생각해도 안됩니다. 이 두 가지 성품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분명히 우리에게 깨닫고 알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 성품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보내셨습니다. 아들을 죽음에 내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사랑하심과 공의로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진정한 사랑이시라면,
왜 죄인들을 심판하시냐고, 그들을 다 사랑으로 용서해주시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공의로우심이 있기 때문에, 죄를 그냥
없이 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루도록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에게 그 죄값을 다 치루도록 하게 한다면,
모든 인간은 살아 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그대로 자기의 죄로 죽게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게 하셔서 인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두 가지 중요한 성품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가장 중요하며 결정적인 하나님의 성품이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는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라는 것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이제 알겠는데, 인자와 엄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의 경계에 서있는 자가 아니라,
구원의 안에 들어와 있는 자로서 깨달아야 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대하시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사랑과 공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인자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엄위로 나타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과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7절입니다.
“11: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사도 바울은 감람나무 가지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감람나무의
가지의 일부가 꺾여지고,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새롭게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감람나무, 즉 살아있는 감람나무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뜻하고, 돌감람나무, 즉 죽어있는 감람나무는 사망을 뜻합니다. 사망의 가지였던 이방인은 이스라엘이 그 생명의 구원에서부터 떨어져
내버리게 되었을 때에, 그 빈자리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배척하고 거부함으로써 구원에서 멀어졌고,
이방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구원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감람나무 가지 비유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을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여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사실, 다른 나무의 가지를
접붙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돌감람나무의 가지에 속해있던 것을 참감람나무에 옮겨 접붙이는 것은 여러가지로 일치하지 않는 많은 부분들로
인해 어려움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셨습니다. 이방인들이 비록 자신들의 삶과 문화와 풍습에서 도저히 하나님을
믿을 만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일을 행하셨습니다. 끝까지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3. 하나님의 엄위로움은 믿는 자들에게 경계가 된다.
두번째, 믿음 바깥에 서있던 참감람나무의 가지인 이스라엘을 꺾어버리신
것이 하나님의 엄위로우심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원가지들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과감히 짤라 버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가지들이 도저히 가지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양분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참감람나무의 가지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참감람나무의 반역자들이었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참감람나무의 원가지들이었지만, 그들을
쳐내셨습니다.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엄위로우심은 새로이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들에게 분명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 21절입니다.
“11: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거부한 이스라엘도 이렇게 쳐내셨는데, 거부한 이방인들을
쳐내시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크게 두려워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마냥
들떠 즐거워할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위하심 때문에 오직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기억하는 자들이 되자.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는 전세계적으로 분명하게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놀라운 기독교 문화와 전통을 자랑했던 서구유럽과 북미대륙에서는 기독교의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점점 그들은
하나님의 참감람나무 가지에서 잘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우리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위에
서있는 것 만이 잘라지지 않는 방법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수많은 교회와 신도들과 교세를 자랑하는 한국 기독교라 할지라도 어느새 유럽의 텅텅 비어버린 교회나, 미국의 노령화된 성도층의
모습이 현실로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생각하며, 늘 깨어 신앙생활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