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롬]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6: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이번 주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부활의 기쁨과 감사 속에서 이번 한 주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부활절 한 주간을 보내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각자 나름대로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면서 보내셨습니까? 주님을
위해 의미있는 일들을 했습니까? 그렇다면 잘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마음속으로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셨다면 잘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부활하심을
본받을 때에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런데,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그의
부활하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부활하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을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조금 더 읽어 보아야 합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이유는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 위해서 였던 것입니다. 좀더 분명한 예를 들어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는 행악자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과 함께 달렸겠습니까? 당연하게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룹니다. 그들은
언제까지 죄의 댓가를 치루게 될까요? 그것은 역시 당연하게도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들은 죽으면 댓가가 다 치루게 됩니다. 또한 죽으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군병들이 죽은 죄인들의 무릎을 꺾었는데, 그래도 그들은 어떠한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못박힌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못박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신해서 고통
당하실 때에, 그 의미는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신이 죽으셨을 때에, 주님의 육체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주님이 더 이상 군병들이 창으로 찔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에 우리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더이상
어느 누구도 죽은 우리를 다시 죽일 수 없습니다. 또한 다시 죄로 끌어 들일 수도 없습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죽은 자입니다. 모순되게도, 모든 병이 사라지는 때는 죽은 때입니다. 모든 죄값이 다 치뤄지는 때도 죽은 때입니다.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때에도 죽은 때입니다. 이제 더이상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는 자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즉, 죄없다 함을 얻었습니다. 다시 말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잠깐 정신을 잃고 나서 깨어난 것이 아닙니다.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죽음으로서 모든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은 죽을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셨던 것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죄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다 사해 주셨고, 이제는 더 이상 죽어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죄인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을 위한 삶은 이제 다 완성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본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살아나심은 앞으로 다시 죄로 인해 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이 그를 다시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사망이 그를 다시 죽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새로운 육체, 새로운 본성, 새로운 성품을 가지시고 부활체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놀라운 영광인 것입니다.
“[롬]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주님과 함께 죽었던 우리들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롬]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것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는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종노릇한데서 해방되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죽은 것이었고, 이제 다시 주님의 자녀로 살고, 주님의 기업을 상속하며, 주님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셨듯이 우리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이라는 돌에 우리 자신을 묶습니다. 그 묶음은 우리 자신을
예전부터 묶고 있었던 죄의 사슬에 더하여 묶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돌이 강물 속으로 빠졌습니다. 그 돌에 묶인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함께 빠집니다. 그리고 그 돌이 강물 바닥에 쳐박혀 있는 동안, 우리는 숨을 쉬지 못해 죽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를 얽어매고 있었던 죄의 사슬도 풀어졌습니다. 죽은
자를 더이상 묶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닥에 쳐박혔던 돌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수면위로
떠올랐고, 하늘 위로 날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앞에 찬란한
영광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함께 떠올랐고, 함께 날았으며, 그 찬란한 영광 옆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자들입니다. 다시는 죄의 사슬이 얽어 맬 수 없고, 돌이
떠오름으로 인해 아직 완전히 떠오르지 않아서 강물 속에 있는 우리는 앞으로 몸이 변하여지고 새로운 육체 새로운 정신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자가 되길 소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소망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활의 감사와 영광과 소망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 그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스스로 고민하십시오.12, 13절을 함께 읽고 마칩니다.
“[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앞으로의 삶속에서 계속적으로 부활의 영광과 소망을 가득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