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베드로는
복음의 전파를 위해 두루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을 만나 믿음을 굳게 하는 일을 하였을 것이고,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땅을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였지만, 베드로는 유대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여행중에 이르게 된 룻다라는 곳도 역시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한 도시였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살고 있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만나 교제를 나누며 믿음과 삶을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성도들과의 교제중에 만나게 되었으므로, 아마 성도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8년동안 중풍병으로 누워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신앙과 삶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성도중에
오랫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자가 있었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쳤던 것입니다.
그가 애니아를
고칠 때에는 별다른 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34절의 말씀대로 일어나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지 그 말 한마디에 애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서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이 일어난 다음의 결과입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그 병고침이 있고 난 다음의 결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일로 인해 무슨 일이 그 다음에 일어났는가를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9: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9: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애니아의
병고침으로 인해, 35절 말씀대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룻다에 사는 사람들만 주께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사론에 사는
사람들까지 주께로 돌아갔습니다. 그 파급력과 영향력은 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께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알지만 예수님은 알지 못하던 이스라엘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베드로를 보고 그리고
실제로 병이 나은 그 환자를 보고나서 예수님의 이름의 권위를 깨닫고 그분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되어 그분에게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애니아의
병고침의 결과는 단지 애니아 자신에게만 미치는 축복과 긍휼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구원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구원의 기쁨을 애니아 한 사람에게만
전하지 않으시고 더 많은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혹은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자들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모습을 ‘돌아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와야 할 곳에 온 것입니다. 언젠가 돌아와야 하는 곳에 온 것입니다. 그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계기는 애니아의 중풍병이 낫게 되는 역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애니아의 중풍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려 8년이나 고통을 겪게 되었던 애니아의 중풍병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의 중풍병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비슷한
경우로 요한복음 9:3에서 우리는 나면서 소경된 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소경된 자의 이유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것은
단지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시는 기적의 도구로 쓰여지기 위함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날 그 시각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기까지 그는 소경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애니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와 만나는 바로 그 때를 위해서 8년이나
고통중에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원인은‘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나타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여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중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성도의 무리중에 있었던 애니아를 통해 그 믿음의 강건함과 분명한 확신을 보여 주셨고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통해
소경일 찌라도 예수님께 대해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분의 명령에 따랐고 결국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진실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속에서 하나님의 진실한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고통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한 소도구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회복을 보여주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 중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며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며 그들로 주께 돌아오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 비천한 몸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증거하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우리 삶속에서 깨닫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올해 우리의 삶은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