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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42눅 1; 67-79 사가랴의 예언과 찬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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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 67-79 사가랴의 예언과 찬양2_5

 

2017. 12. 22. .금요철야

 

*개요:  성탄의 의미,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1: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1: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1: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길을 준비하여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1: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성탄절이 가까이 왔습니다. 성탄절의 일들이 준비되며기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세상이 오신 날에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트리를 만든다고 해서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정말 충만하게 임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자발적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준비하게 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그리스도의 초상이 소더비 경매에서 5천억에 팔렸습니다.처음 이 그림은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채로 1958년에 러시아의 한 수집가에 의해서60달러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작가가 다빈치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 대상이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확인 된 이후에 엄청난 가치가 인정되었습니다. 처음 수집가는 천억에 내놓았지만 결국에는5천억원에 팔렸던 것입니다. 그 그림을 산 사람은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의 한 왕자라고합니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전시가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그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단지 예술작품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림은 샀지만 예수님을 만나지는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의 의미는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다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날을위해 준비하는 모든 것은 그저 허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본질을 살피고 그것을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그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의 의미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는 것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68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가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었고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그 연관성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윗의 집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신다는의미였습니다. 약속하신 메시야를 보내어 주셨다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미는 신학적으로 놀랍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놀라운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설명은 우리에게 더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좀더 실제적인 의미가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 중요성을 깨달을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미술품을 볼 때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기법과 표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그 그림이 얼마나 위대한가를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사적 의의나 기술적인 놀라움 뿐만 아니라 그 미술품의 가격을 들으면더더욱 실감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오신 것의 가치는 그 가격은 무엇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70절과 71절을 보십시오.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원수와 우리를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는 구원이 되십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어떻게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실 수 있습니까?74 75절을 보십시오.

“[]1: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그분께 경배를 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에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그들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며 두려움이 없이 주님만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애굽에서 건지심을받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해당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기 위하여 나가고자 하니까 애급의 종되었던 삶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움직일 때에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고있는 모든 욕심과 우상과 죄와 악함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온갖 문제로 가득하게 되었을 때 그는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럴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얽매이는 것을 다 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때 이러한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모든 욕심과 두려움과 절망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우리를 괴롭혔던 모든 고통이 사라집니다.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가랴의 찬양이 우리의찬양이 됩니다.

“[]1: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주님을 마음 속에 모셔 들일 때 주님은 우리를 평강의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배를 타면 그 배의 목적지에 가고 비행기를 타면 그 비행기의 목적지에가듯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면 예수님의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됩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모셔봅시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우리의 고민은 주께 맡깁시다. 세상고민은 죄다 마음 속에 품고 있지 말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음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더욱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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