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1영역-사회]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감정-두려움]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1영역-개인]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2분류-관계]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1영역-개인]
38. 이에 성소 휘 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1영역-사회]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2분류-관계]
고난주간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과 죽으심에 대해서 묵상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단순히 죄인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잡히시기 전날 부터 죽음에 이르시기까지의 모든 시간이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을 더욱 닮고 주님을 더욱 따르고 주님의 가신 길을 우리도 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분의 생각을 하면서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을 따라가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서 우리는 그 모든 예수님의 가신 길의 절정을 보게 됩니다. 그 절정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 위해서 주님이 알게 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애써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십자가에 달려 계십니다. 그 십자가 위에 예수님은 제 3시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 6시가 되었습니다. 세 시간이나 매달려 계셨고 그 때는 고통이 극심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십자가 형이라는 것이 너무나 잔혹해서 피를 다 쏟게 만들어 죽이는 것이고 오랫동안 그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시간동안 형틀에 매달려 있었을 때 주님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6시부터는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6시는 우리 시간으로 낮12시에 해당하지만 그때에 어두움이 가득차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 구시가 되었을 때 주님은 크게 소리지르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예수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하시면서 괴로워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찾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는 생각못하고 ‘엘리야’를 찾는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차마 예수님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찾는 엘리야가 그를 도와주러 오나 보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선지자라면 그렇게 어렵고 힘들 때 죽은 엘리야가 살아나서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 내려오는 깜짝쇼가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준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해서 고통스럽게 죽지 않고 다시 회복해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은 살아계시니까 비록 손에 못자국이 있고 채찍에 맞았다 하더라도 상처를 치료해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어둠도 짙게 내려져 있었고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는 크게 다시 한번 소리지르셨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고통이 그의 온몸을 휘감고 나서 주님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그가 기다리던 엘리야는 오지 않았다구요. 그는 아무런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라구요.
혹시 여러분도 마지막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엘리야가 도와주려고 오지 않았을까 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오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이 생각한다면 왜 하나님이 예수님을 도와주시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고통없이 죽지 않았을까, 왜 예수님이 편하게 죽지 않았을까, 왜 예수님은 마지막에 그렇게 하나님을 불렀을까, 왜 날이 어두워지는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었을까. 이런 저런 궁금증과 의문이 들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십자가 옆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을 엘리야로 오해한 것처럼 여러분도 역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왜 자신을 버리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하나님을 불렀지만 그것은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아버지의 원으로 고난의 잔을 마셨지만 그 고난의 잔이란 사실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정말로 버림받았음을 깨달았고 그것을 괴로워하면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주님은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예수님 자신이 깨달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그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주님은 버림받았음을 깨닫고 괴로워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주님은 버림받고 죽으셨지만 그분이 죽으셨을 때 그를 지키던 백부장은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면서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본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버림을 받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백부장 만큼은 예수님이 이렇게 운명하심이 진실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됨을 나타내 준다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버림을 받았는데 오히려 인정이 되다니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외친 것 같은데 도움을 받지도 않았는데 그 모습은 오히려 백부장의 눈에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 괴로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심판받는 심판대에서도 예수님은 엘리야를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구원해 달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기억해 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드렸던 것입니다. 자신은 인간의 모든 죄악을 뒤집어 쓰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버림받았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는 인간의 모든 죄가 얹혀져서 지금 십자가에 달린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형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죄악임을 아시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예수님의 영혼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백부장의 눈에는 정말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비추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운명하심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도 보증해주지 않을 때 어떠한 방법으로도 증명할 수 없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단지 예수님의 말과 행동으로만 그것을 나타낼 수 밖에 없을 때 인간은 어떻게 그분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나요? 바로 아들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의지하는가를 보면서 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을 백번 천번 말하지 않아도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말과 행동은 충분히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죄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분은 끝까지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일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맡기며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죽으신 것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입니까?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까? 아무리 여기에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여기에 증인이 있다 하더라도 제 3자가 보증해줄 수 있다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생각하느냐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의지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그 예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섬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였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럴 때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였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그분이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자리에 바로 옆에 계시리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우리도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이 세상에서 몸과 영혼이 분리되고 눈 앞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하나님이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동참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십시오. 일희일비하지 말고 어렵다고 해서 주님을 부인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붙드십시오. 그리면 끝까지 주님도 여러분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목차 <4이야기>
1발단.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하심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짖고 있었다.
2전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는 사람이 혹시 예수님을 도와주지는 않을까 생각하였다. 마침내 예수님은 죽으셨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그것을 끝이었는가?
3절정. 예수님이 하나님을 부르신 것은 도움을 받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함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나타내었다.
4결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을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붙들고 그로부터 떠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