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반대되는 다른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의와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에 대해서 사랑으로 다스리시지만 동일하게 이 세계에 대해서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그분이 선과 악을 주관하시고 결정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완전한 선이 되십니다. 우리가 죽으면 가게 되는 천국과 지옥도 하나님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지 지옥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탄이 지옥을 다스리거나 관장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간 모든 것을 판단하시며 심판하시고 그것으로 상을 주시거나
벌을 주십니다.
오늘 이사야의 말씀 속에서 강조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분의 두려우심을 안다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도저히 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낯을 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눈길을 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이해한다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4절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4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지는 자는 악인들입니다. 그들은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에게
토색하며 고아의 것을 약탈했던 자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저렇게 악한 자들이지만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저렇게 행동하지만 저들은 평안하고 승승장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벌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은 쓰러지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치셨고 또 치셨습니다. 그들은 엎드러졌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분노는 쉬지 않으며 그 엄위로운 형벌은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범죄함 때문입니다. 그들의
강퍅함 때문입니다. 그 강퍅함을 처리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속 그 손을 펼치십니다. 목적이 죄악에 대한 완전한 제거이기 때문에 한 두 번으로
끝나게 되면 그들은 다시 죄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회개하거나 항복하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지속됩니다.
12절에 이러한 하나님의 형벌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주님의 형벌은 단지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 왕을 사용하였으나 그 도구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를 통해서 벌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죄악을 싫어하시고 그 죄악이 퍼져나가는 것을 거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죄를 다스리시는 일에 얼마나 열심이
있으신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죄는 하나님의 본성을 해치며 그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선이신 주님은 반드시 선을 이루시기를 바라시고
악은 반드시 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제한되거나
중지되지 않습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 죄에 대한 소멸과 처벌을 온전히 이룰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확장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만과 엘리입니다. 먼저 하만의 경우를 보십시오. 하만은 모르드개를 미워해서 모르드개와 함께 다른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함께 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고 그분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하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르드개를 해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짓는 것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
민족을 없애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도발하는 것임을 몰랐습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였다면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자였다면 하나님은 그런 기회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악인이었고 이미 나름대로 성공한 자였기 때문에 교만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가 행하려는 죄악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만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그는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세워놓았던 망대에 자기가 달렸습니다. 그가 죽은 것으로 심판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계속 되어서 그의 열명의 아들들이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만의 편이 되어서 유다인들을 죽이기로 계획했던 악인들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임을 당한 자가
모두 칠만 오천명이 되었습니다. 악인 한 사람 만이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악인에 함께 했던 다른 악인들까지 다 함께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엘리 제사장이 있습니다.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 악한 일은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일을 한 당사자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이지만 엘리는 제사장으로서
아들들의 잘못을 묵과하였습니다. 성전에 있으면서 성전의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아들들이 저지르는 죄악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들에 대해서 만류는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죄로 인해서 엘리 제사장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또한 그의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하신 심판의 말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자손들은 모두 젊어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이스라엘은
복을 받을 지라도 엘리의 집 자손들은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하나님의 처벌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을 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와 돌이키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고집속에서 계속적으로 죄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패망과 실패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과 그 능력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떠한 때이든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로움 속에서 감사와 찬양을 올리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어느 때이든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돌아옴을 받아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10장 20절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그들의 모습은 이전에 자기들이 의지했던 이방인들과 다른 나라를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자신들이 의지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망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에게도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그들 자신에게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에 대해서 엄하고 단호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시며 돌이킬 때에 또한 살려주시는 분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권능의 손에서 피하려고 하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그는 요나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원하시는 일이 있었지만 그는 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잡히고 얽매이며
고생하였습니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여 다시스로 떠났지만 그가 다시스로 가려 하면 할 수록 그는 하나님의 정죄하심과 고통받음을 경험하였습니다.
문제가 해결이 되고 뜻대로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문제는 꼬이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던 것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폭풍이 몰아닥치고 괴로움이
지속되면서 요나는 한계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고집을 부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요나는 비로소 고집을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요나가 비로소 고집을 버렸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받으셨습니다. 요나가 회개하였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의 어깨에 메워져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쫓아오셨고 마침내 하나님께 붙들렸을 때에 하나님은 그의 짐을 풀어주셨습니다. 이사야 10장 27절은 그때의 놀라운 은혜를 보여줍니다.
“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그 고통 속에 허우적 거렸던 삶이 변하여 자유로운 삶이 되었습니다. 그 괴로움이 변하여 희락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삶이 되었겠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니느웨에 가서 그곳에서 자신의 사역을 놀랍게 펼쳤습니다. 그곳에서 하루동안에만 회개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곳 백성들이 전부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였고
왕까지도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삶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삶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멍에와 굴레에 얽매이는 삶이 되겠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는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 멍에가 부서져 버릴 것입니다. 그 기름부으시는 은혜가 하도 커서 그 멍에는 부서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 혹시 있을 지 모르는 멍에와 굴레를 벗어버리고 온전하게 축복되고 아름다운 삶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영원토록
거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힘있게 신앙생활하시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