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발전] 41막 5; 35:43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주님2Loading the player...
41막 5; 35:43 죽은 자를일으키시는 주님2_5
2017. 2. 24. 금. 금요철야.
*개요: 마가복음 연구 [막]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막]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막]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막]5: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곳에 들어가사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5: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한 소녀를일으키시는 지를 보게 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어떻게 우리들을 일으키시는 지도 보게 됩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역사하시는 각 과정을 보면서 살펴보고자합니다. 35절부터 36절이 그 놀라운 사건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막]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모든 일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런 일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시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도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교회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도 들어갔고, 직장도 들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모든 일이 시작하자마자 완성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이제 시작한 것 뿐입니다. 앞으로 넘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구절이 믿음으로 시작한 일의 진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막]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막]5: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만을 데리시고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상황 속에서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상황은 너무나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너무나 두려워할 수 있었던 상황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훤화하며(소동하며) 울며 심히 통곡하였지만 예수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있어서 이 아이는 자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병으로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사로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죽은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예수님께서 나사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는 그가 잠들었고 내가 깨우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늘 우리에게는 종말이지만 주님께는 잠시 휴식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전에 주님께서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했던 말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러한 의미로 말씀하십니다.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하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주님의 판단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오늘날 모든 삶에 대해서 주님은 끝이 아니라고 말하십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 뿐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우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성도들은, 우리의 이웃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주님의 깨우심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개 과정 속에서 놀라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그 말이 달리다 굼입니다. ‘달리다’가 일어나라(ταλιθα, talitha)는 말입니다. 그리고 ‘굼’이 소녀(κουμ, koum)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고,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으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 아이에게 다가가셔서 손을 잡고 ‘소녀야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정말로 그를 깨우신 것입니다. 그 아이를 깨우시는 능력이 바로 주님께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슬픈 장례식장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울고 있었고 유족들은 손을 벌벌 떨면서 울었습니다. 고인은 너무나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도 그를 다시 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유족들은 오열을 했습니다. 만약 그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은 변화시키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신 예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결국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해 나타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이 놀라운 사건의 결과였습니다. “[막]5: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하시니라” 여기에서 나타나는 주님의 영광은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더 드러나야 할 것 같은 하나님의 영광인데 왜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사람들이 기적을 행한 자신보다 기적을 체험한 그 소녀에게 더 몰릴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지나친 관심이 소녀를 힘들게 할 것을 아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주님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속에서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주님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게 나타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기적의 사건이 전파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적의 주체이시자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기적의 근본이시자 핵심이신 주님을 온전히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그분의 새로운 기적과 은혜를 경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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