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의 시작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전부터 있어 왔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예전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을 끊임없이 의심하였던 자들입니다.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멸시하였던 자들입니다. 다시 우상을 섬기며, 죄에 종살이 하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하늘의 군대를 섬기며, 일월성신을 숭배하는 죄에
그대로 내버려 두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전부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그 자취를 찾지 못하도록 처참히 멸망당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또한 항상 성령을 거스린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항상 거역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끊임없이 시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들을 늘 경멸하였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잡아 죽였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하여 전하여 준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런 자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이 시대에도 그 존재를 나타내고 있으며 교회와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이런 자들의
특징은 말 그대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목이 곧다는 것은 마음이 강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강퍅하였던 자의 대표적인 사례를 바로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번 죄를 짓고자 하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죄를 짓고야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징계를 받고 고통과 환난을 당해도 끄덕없이 끝끝내 죄를 짓고야 말았습니다. 죄를 지어야 겠다는 신념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 자신과 함께한 일행과 모든 관계된 무리들을 바닷물
속에 잠그고 나서야 끝이 납니다. 완전히 멸망당해야 끝이 나는 그러한 자들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례란 언약입니다.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세우는 약속이고 증표이며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경멸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돌이켜서 사탄과 죄에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이리 불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불면 저리 흔들립니다. 한마디로 말해 불신앙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충고과 권면과 회개케 하시는
말씀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귀에 죄의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게 되어있지만 이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들리지도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합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두려움없이 용기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멋대로입니다. 왜냐하면 귀로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이 가져오는 결과는 과거에 존재했던 자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자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며 율법을 지키지 않음같이 오늘날에도 그러한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는 자들에 대해서 분노를 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려고
합니다. 이를 부득부득 갑니다.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것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듣고 싶지 않은 얘기, 자신들의 잘못과 마음에 찔리는 얘기에 대해서 신경질적이며 거칠고 거세게
반항하며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자에게 공격하는 이 모습이 바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지금 과거 스데반을 돌로 쳤던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이겠습니까? 조상들을 본받아 강퍅함으로 스데반을 돌로 쳤던 그 사람들을 본받아서 오늘날에도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마음에
찔리는 이야기를 하는 자들을 돌로 치고 있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옳은 이야기이지만 백번 생각해도
맞는 말이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찔리게 하는 말이지만 듣고 싶지 않고 자존심 상하고 목이 곧고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공격하며
매장하고 돌로 치며 쫓아내고 학대하며 비판하는 자들이 오늘날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니가
뭔데, 너는 얼마나 잘났길래, 너는 얼마나 똑바르게 하길래.’등의 거센 항의와 공격과 비난이 되려 일어나는 모습속에서, 성경에
나타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란
바로 이런 자들을 두고 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교회 안에서 국가 안에서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강퍅한 모습들을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돌을 맞아 비참하게 죽어버리는 수많은 스데반과
같은 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돌을 던지는 자들이 우리들 스스로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자들’은 우리들 자신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스데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잘못과 치부와 거짓과 실수를 들추어 내어 마음에 찔리게 만드는 스데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고민이 우리에게 있다면 정말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참으로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히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강퍅케 된다는 것은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권면함으로써 이러한
죄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죄의 유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에게 권면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에 우리는 되돌이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마음을 돌이켜 되돌아 오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악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대조적으로 스데반은 아무런 힘이 없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고 아무도 막아주지 못해서 그렇게 돌에 맞아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데반이 부르짖은 것은 자신을 구해달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스데반은 이미 죽을 각오를 했다는 것입니다. 학대와 공격과 돌로 침을 피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로 치는 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스데반은
자기의 갈 길을 간 것 뿐인데 그를 죽인 자들은 살인한 죄를 다 감당해야만
하는 범죄자요 흉악한 죄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스데반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 스데반을 죽인
자들에게 죄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죄는 그렇게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뜻은 스데반을 돌로 친 자중에 그들과 함께 있던 자들 중에 회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할 것같으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자들이 다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말았겠지만, 회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죄를 사해주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있었던 사울이 나중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자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죄를 돌리지 마시라는 간구는 돌로 친 무리 각 자가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시는 것으로 응답되었습니다. 저들은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반대로 스데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의를 호소하는 의인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잃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의를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하나님의 종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부르짖음을 듣는 자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 목소리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이 있을 때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에 찔림이 있을때 돌이켜야
합니다. 손에 든 돌을 내려 놓고 쓰러져 울며 자신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죄짓기 쉬운 우리 마음이 실제로 죄를 지어 버리는 살인자요,
핍박자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의롭고 신실하고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스데반처럼 하나님의 의를 부르짖는 자라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의에만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이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달라고 다시 말하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의를 호소하는 자는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목이
곧고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저들이 회개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그 후에 그들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스데반이 하나님의 품속에 안긴 것처럼 우리도 미움이나
증오가 아닌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만을 따르다 하나님 품에 안겼음을 만족스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스데반같이 하나님의 의만을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스데반과 같은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공의로움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