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7: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수]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수]7: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수]7: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수]7: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사람이
느끼는 절망에 대해서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이라든지 땅이 꺼지는 절망이라든지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속에서 우리들은 좀더 색다른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어떤 분에게서 부모가 돌아가실 때 느끼는 고통을
땅이 꺼지는 절망이라고 말하고, 자식이 죽을 때의 고통을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이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슬픔보다 자식이 죽는 슬픔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건 무슨 표현입니까? 이 말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절망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나타나는 멸망에 대한 또다른 표현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완전한 멸망을 가리켜
성경은 ‘돌하나도 돌위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되고 무너져서 돌하나도 돌위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완전한 멸망, 파괴 그 자체인 것입니다.
“[수]7: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수]7: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맥락으로 마음의 멸망에 대한 설명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물처럼 되었다는 것은 돌하나도 돌위에 남아 있지 않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완전히 허물어 졌다는 것입니다.
물처럼 되었는데 쌓아 올려질 수 있겠습니까? 어떠한 의지라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완벽한 절망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에 빠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입성하여 여리고를 무찌른 뒤 그 기세로 조그만 아이성을 함락하려다가 실패하고 크게 패하여 많은
손실을 입고 퇴각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만
그러한 상심과 절망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의 절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절망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왜 그렇게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드는 두려움과 공포는 무엇입니까? 절망이 한없이
절망스러운 이유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망은 한없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며 슬프게 만들고 공포스럽게 만듭니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돈을 많이 빌려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보십시오. 열심히 노력해서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보십시오.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결혼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
일에서 커다란 장벽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졌습니다. 도저히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나게 될 끔찍한 실패가 하루하루 다가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심각한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힘을 다 잃어버립니다. 마음이 물같이 되어
쓰러져 버립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게 쓰러져 버립니다.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절망입니다.
이럴 때, 과연 어쩌면 좋습니까? 우리의 물같이 되어버린 마음을 누가 구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가까운 사람의 권고나 충고나 위로도 이런 상황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말뿐이니까요! 진정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한, 우리의 마음은 소망을 잃어버린 절망에 헤멜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우리들에게 본문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커다란 동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말씀 속에서 경험하는 절망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경험을 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로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장로들과 함께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무릎쓴 채로 하나님의 괘 앞에서 해가 질 때까지 땅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수]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수]7: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그 모습은
이스라엘 온 백성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상심하고 절망하며 낙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찢었기 때문에 옷을 찢었고, 더이상
즐거움을 가질 수 없음을 알았기에 머리에 티끌을 무릎썼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처절한 절망에 빠진 이유는
조그만 성 아이성을 무찌를 수 없다면 그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들이
이길 수 없다면, 다 죽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한번의 전쟁에서 맛본 실패는 앞으로의 모든 전쟁에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었고, 온 민족의 몰살당하게 됨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처절한 절망속에서 그저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우리를 다 죽일 텐데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수]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수]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의 물같이 되어버린 마음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듣고 살아갈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그의 마음은 주님을 위해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울며 하나님께 하소연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되신 것이 아니라,
무리 중에 죄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다시 마음을 추스려 일어날
수 있었고, 죄악을 제거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여리고와
아이와 모든 가나안 지경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어떻게 할 수 있는가가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서게 되면, 더이상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소망에 넘칩니다. 이번엔 제대로 한번 해봐야 겠다는 오히려
더욱 굳은 결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문제를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각한 절망속에 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 잘못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들 중에 죄인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에서 벗어나 소망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점을
좀더 중요하게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해 무엇이 잘못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말씀이 들려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직접 귀에 들린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 들린 것이 기록되어서 우리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되는 지를 간구할 때에 하나님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출발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 아니라,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소망일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여러분 자신의 절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발견하시기를
주님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