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는 그리스도인의 정신목표로 넘어가서 ‘삶 속에서 정신에 대한 목표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신의 문제를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어려움이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정신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괴롭고 아프고 힘들게 됩니다. 그런데 차이점은 그런 몸의 문제 속에서 신앙적인 목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정신의 문제를 신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이지만 정신의 문제라는 심각한 상황이 신앙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병든 것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만 전파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치료자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신체 문제는 병원에서만 해결하고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신체 문제를 필요한 병원의 치료를 통해서 해결하지만 본질적으로 신앙적인 간구와 소망을 가질 때 단순한 정신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영적 문제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그런 면에서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였고 그로 인해서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현재의 신체문제 속에서 목표를 가질 때 신앙적인 간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오늘 다루고자 하는 것은 ‘자유함’입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신체의 문제는 ‘강박증’입니다. 강박증이라는 구체적인 정신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꼭 그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잘못된 습관이나 성향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유함을 얻는다면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구체적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자유함을 얻게 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앞에서도 보면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 대해서 예수님의 판단이 어떠하신지를 보여주셨고 자신이 세상의 빛이며 그가 가는 길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제 설명하려고 하는 자유함을 얻는 근원이자 원리가 되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분인지를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으면 그분을 의지할 때 자유함을 얻게 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예수님을 의지할 때 자유함을 얻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모든 권세와 능력의 근원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면 그분의 권세와 능력으로 인해서 그에게 속하게 되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에는 그분의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이라서 모든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강박증이나 습관이나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에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상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거하고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되려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유혹이나 방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비진리나 개인적인 선호나 성향에 얽매이지 않고 그런 경향성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여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요]8: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하지만 그들의 매임은 죄를 범하는 매임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강박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강박증은 스스로의 사고방식에 묶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했던 행동을 반복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매어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계속 그런 사고나 행동을 꾸준히 진행합니다. 그것이 본인이나 다른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행동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박사고 밑에는 그걸 해야만 한다는 원함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든지 그걸 해야 자기 자신이 좀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든지 하는 사고패턴이 있습니다. 그걸 깰 때에 비로소 매여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확인강박이나 혹은 저장강박, 조건강박 등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 성격이나 경향 속에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걸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 없어서 계속 매여 있고 그러면서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매임에 자유롭게 되는 방식은 그리스도인이나 혹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상관이 없이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것은 더 중요한 것에 이끌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견인이 되듯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내용에 소속될 때 비로소 그보다 작은 것들은 해제됩니다. 예수님께 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에 자유롭게 됩니다. 모든 악하고 부정하며 피해야 할 것들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자유는 아들을 따를 때 얻게 됩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요]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셔서 그를 자유롭게 하신 것은 단순한 자유가 아닌 예수님의 권세의 더 크심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려고 할 때 다른 모든 사소한 규칙이나 징크스나 운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려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며 그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불신자들에게도 참된 자유를 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모든 얽매임을 거부하면서 온전한 자유함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