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16느 4; 7-14 대적들에 대응하는 느헤미야의 방법 [64인내]Loading the player... .
16느 4; 7-14 대적들에 대응하는 느헤미야의 방법_2
2022. 8. 21. 주. 주일오후. 온라인설교.
*개요: 느헤미야 연구, 64인내
[느]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느]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느]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느]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느]4: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느]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느]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느]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목공사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나라를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룰 수 있기 위해서 더욱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희생과 수고가 빛이 났고 그의 노력과 열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럴 때 그의 모든 노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 자신들에게도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잘 알기에 백성들은 모두 함께 합력해서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건 상인들이건 누구나 함께 참여해서 자신의 맡은 부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개인이 감당하기도 하고 가정이 감당하기도 하고 가문이 감당하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성벽재건을 통해서 하나씩 차근차근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진행되던 성벽재건의 일들이 그들을 시기하던 악인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느헤미야가 보여주는 대적들에게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7절부터 보게 됩니다. “[느]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느]4: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느]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산발랏과 도비야는 말로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축을 비난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사람들을 모아서 예루살렘을 치고 그곳을 요란하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숨겨진 위협이었고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럴 때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이끌고 행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파수꾼을 두어서 주야로 방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하나님의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성벽을 지켜내려고 주야로 방비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중요한 신앙의 방법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인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인내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가기도 하시고 산에 오르기도 하셨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하셨고 예루살렘 수도에도 올라가셨다가 내려 오셨다가 여러 상황과 형편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었지만 도망가거나 거부하지 않고 예수님을 잘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십자가에까지 따라갔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이후에 열 두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열 두 사도의 정의는 예수님과 함께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인내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는 좌절이나 절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기다리던 무엇인가가 빨리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십시오. “[느]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느]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그는 도움을 요청하는 유다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백성들이 종족을 따라 전투를 준비하고 서 있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그들이 모두 함께 있을 때에 대적들의 위협과 두려움을 잘 인내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이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느]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주를 기억하고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역시 함께 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하는 마음이 있었을 때에 그 대적들의 위협을 잘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을 무작정 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의 필요성을 깨달았으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모든 어려움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부담감과 두려움은 줄어들고 함께 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더 큰 소망과 능력이 커져갑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그렇게 대적들에 대응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대응할 때 놀라운 인내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에 함께 하시고 도우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한 하나님 바라보며 주를 생각하면서 잘 인내하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