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50빌 1; 22-30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사람들2Loading the player...
50빌 1; 22-30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사람들2_5
2021. 6. 11. 금. 금요철야.
*개요: 빌립보서 연구
[빌]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1: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빌]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1: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1: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기쁨이 있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의 중요성 속에서 우리가 오늘 보려고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속에서 기쁨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순간의 선택에 대한 것입니다. 기쁨의 신앙생활이 될 수 있는 선택에 대해서 말씀 속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그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 삶에 존재하는 하나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기쁨의 신앙생활이 형성됩니다. 27절 말씀에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던 하나의 선택이 나타납니다. “[빌]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즐거움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유익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바로 기쁨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따를 때 그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유익을 돕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성도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왜 기쁜 일인가 하면 그 협력은 복음의 신앙을 위한 협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게 하기 위해서 협력한 것입니다. 복음을 믿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한 사람의 구원받음에 대해서 협력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협력하였기 때문에 누군가 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구원받음이 감사하고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보람과 가치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의 의미는 그 앞서 나온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 것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한 기쁜 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부족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일들로 사도 바울은 더욱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빌]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1: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기쁨은 더욱 커져갑니다. 그리스도를 더욱 자랑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될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거해 주셨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는 분명한 사명과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명과 부르심을 실천하고 완수하며 살아가는 것은 복음을 맡은 자들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기쁨은 일반적인 생활의 기쁨과 성격이 다릅니다. 신앙의 기쁨은 주어진 일을 끝냈을 때의 기쁨입니다. 생활에서의 기쁨은 그 때 그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기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기쁨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고 복음의 전파에 협력을 하는 구체적인 실천이 먼저 있은 다음에 기쁨을 얻는 것이지만 생활의 기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실현함으로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기쁨은 조금 후에 얻는 것이고 생활의 기쁨은 지금 당장 얻게 됩니다. 그러나 생활의 기쁨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신앙의 기쁨은 그로 인해 더 좋은 것을 얻는 결실이 있고 열매가 있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는 자들이 갖는 기쁨입니다. 이 신령한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원하는 분야와 원하는 수준과 원하는 이유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신앙의 기쁨은 그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기쁘고 기쁜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신앙의 기쁨의 영광과 감사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 반대에서 세속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의 수치와 고통을 보게 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빌]1: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합력하는 자들이 있으면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또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그러면 그럴수록 멸망의 증거를 쌓아가는 것이고 믿는 자들은 구원의 증거를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증거는 그들이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께 대한 대적함과 악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구원의 증거는 믿는 자들이 복음을 위해서 행한 그 모든 일들이 전부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 믿음에 대해서 우리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 믿음의 증거가 바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진실하다면 왜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협력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그러한 믿음이 없고 복음의 전파에 대한 의지가 없을 때에는 복음의 전파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소홀하고 외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구원의 증거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고 멸망의 증거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의 일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기뻐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에 협력한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에 협력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의 선택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사람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복음의 신앙에 대해서 대적하는 자들이 될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 속에 그렇게 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기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상급과 칭찬이 있습니다. 구원의 증거가 틀림없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을 교회와 성도들이 증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어떻게 협력했는지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협력의 순간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증거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도 모르고 장로도 모르고 권사도 모르고 성도들은 아무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 귀한 수고와 손길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힘주심이 있고 인도하심이 있을 때 그것을 온전히 붙들기 위해서 우리는 고난을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1: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으면서 우리는 단지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감수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사도 바울의 권면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격려하십니다. 우리는 편하게 믿기만 하지 않고 틀림없이 고난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은 결코 무의미한 고난이 아닙니다. 분명 놀라운 열매와 결실을 얻게 하는 기쁨의 고난입니다.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으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만날 날이 다가옵니다. 그분의 전파를 기뻐하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온 힘을 다해서 복음에 헌신하였고 빌립보 교회도 그래서 그 복음의 전파에 협력했습니다. 그분을 기뻐하면서 협력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 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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