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48갈 5;7-15 누룩을 이기는 사랑의 복음2Loading the player...
48갈 5;7-15 누룩을 이기는 사랑의 복음2_5
2020. 5. 8. 금. 금요철야.
*개요: 갈라디아서 연구 [갈]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갈]5: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갈]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갈]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갈]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얼마 전 한 교회의 제자훈련에서의 일탈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제자훈련을 하고 좋은 의미의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과정과 방법이 잘못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바른복음, 바른신앙의 모습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강조는 이 시대에 우리가 따라야 하는 중요한 신앙의 방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거짓된 복음이 있고 다른 신앙이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 종종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 대해서 가르칠 때 학생들이 아쉬움을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만 않았다면 우리도 에덴동산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두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하는 말이지만 우리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그런 실수만 저지르지 않았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의 잘못은 우리의 인생속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며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생각해야 하는 것은 유혹하는 존재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 대해서 경계심을 잃어버리면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또 다시 그런 대상이 찾아올 때에 아무 생각없이 속아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러한 점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분명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고 있었는데 왜 실족하였을까요? 잘 달리고 있었는데 왜 넘어졌을까요? 누가 그들의 발을 걸었을까요? 누구의 유혹과 설득과 충고를 받아들였기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권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갈]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갈]5: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갈]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 뒤에 뱀이 있었다면 우리의 범죄함과 실족함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전혀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고 그 쪽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이 됩니다. 다른 사람 탓할 것이 없이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 문제였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만약 내가 누구의 잘못된 조언을 받아들였는가를 분명히 깨닫지 않으면 다음 번에도 역시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잘못된 조언을 받아도 그대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번번이 속고 계속 속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뒤에라도 무엇에 속았는지를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피노키오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와 같이 늘 끊임없이 피노키오를 유혹하는 악당들이 나옵니다. 항상 그 유혹에 넘어가는 피노키오를 보면서 분통을 터트리곤 하였지만 그 모습이 사실 우리들 자신의 모습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늘 유혹과 시험에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우리들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번번이 넘어지고 좌절하며 포기해 버리는 우리를 주님은 안타깝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서 죽으셨고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다시 예전의 주님과 친밀했던 관계로 또한 이전보다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여전히 뱀과 같은 악한 조언을 하는 자들이 지금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번 받아들이면 전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사탄의 시험을 받았고 그 시험을 이겨내신 것처럼 우리도 그 시험을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떡으로 시험받았고 뛰어내리는 것을 시험받았고 영광으로 시험받으셨는데 이 시대에 우리도 유사한 것으로 시험받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이겨내는 온전한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뿐이라는 점입니다. “[갈]5: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있고 그분에게서 나와서 그분을 따라가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의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유혹을 이기고 주님을 따라가는 온전한 복음을 따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온전한 복음을 훼방하며 어리석은 복음의 의미를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본질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갈]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갈]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그토록 할례를 받게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래서 새언약이 아니라 옛 언약 속에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자들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나 그렇게 만들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토록 실족하게 하고 세상적으로 살아가게 하며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이나 그렇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저들의 계획에 넘어가지 말고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들 자신이나 세속적으로 살고 우리는 좀 내버려 두라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그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면 자기 자신이나 실컷 누리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단호한 결단이 관계를 절단하고 다시 우리를 새롭게 세울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결단은 사랑에 대한 결단입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모습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며 낮추며 돌보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의 삶이요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됨을 얻은 자들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의 유혹과 악한 자들의 궤계를 뚫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그것만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다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자유가 무익하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모든 기쁨과 감사가 무력해집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닮아 나아가는 삶만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다시 하나님안에서 잘 달리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 잘 달려서 끝까지 나아가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우리의 생활과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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