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발전] 48갈 4; 1-6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2Loading the player...
48갈 4; 1-6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2_5
2020. 3. 27. 금. 금요철야.
*개요: 갈라디아서 연구 [갈]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4: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갈]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사도신경에서 이 부분은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너무나 별 주의없이 흘러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우리는 정말 중요하고 놀라운 표현을 아무런 생각없이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그저 마음으로만 믿을 뿐인 그 분을 우리는 어떻게 아버지라고 부를까요?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불러주시는 이유가 나오는데 그것은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갈]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4: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갈]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우리는 이전부터 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피조물이었을 뿐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아들이 되는 과정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바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내려오신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이 목적은 성취되었고 정말로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도 남김이 없이 완전히 다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 어떻게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을까요? 그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속량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는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거리가 생겼었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써 그 간격이 메워져 버린 것입니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두 번째는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입니다. 아들의 명분은 아들의 이름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이름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갈]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가 사해 진 것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실 때 아들의 모습이 함께 얹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게 되었고 그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 영을 통해서 아들의 소원을 이루며 아들의 뜻을 따르는 자들로 변화됩니다. 그럴 때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를 자녀로 바라 보시는데 우리가 자녀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를 부르고 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뒤에 모든 과정과 절차는 다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오직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쁜 마음으로 담대히 나아와야 합니다.
그럴 때 누리는 영광에 대해서 성경은 ‘유업을 이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유업을 잇게 된다는 말이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보면 그 말을 온전히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많은 영광과 유업이 있습니다. 그로 인한 상급도 엄청납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많은 주님의 일들이 전부 주님께서 맡기시는 유업의 상을 얻게 하는 것들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이러한 아들의 변화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눅]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이 아들의 귀향을 기뻐하면서 아버지는 변화된 아들의 모습을 기뻐하면서 곧바로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신었습니다. 그것이 아들에게 주시는 아버지의 온전한 회복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일 때 그냥 자녀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과정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는 삶 속에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결심입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좋은 결심과 변화가 우리 자신에게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세우십니다. 또한 그러한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면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이 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서 느끼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앞으로 더욱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유업의 상을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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