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47고후 11; 19-23 어리석은 자들을 받아주지 말라2Loading the player...
47고후 11; 19-23 어리석은 자들을 받아주지 말라2_5
2018. 5. 11. 금. 금요철야
*개요: 고린도후서 연구 [고후]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고후]11: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고후]11: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후]11: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고후]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우리가 이전에 이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이단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수십 개이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과 다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이들이 차라리 타종교와 같게 취급된다면 오히려 간단하겠지만 겉으로는 기독교이며 교회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주의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주제는 그 이단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도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단이기는 하지만 불쌍하게 혹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나아가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정통신앙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이단에 대한 태도와 관점에 대해서 특별히 포용주의와 용납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고후]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고후]11: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그들에 대한 인내와 아량, 그리고 용납함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단들에 대해서 기쁘게 용납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비난당하고 모욕당하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끌어 안고자 했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적그리스도의 무리가 되었고 복음의 방해자들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포용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단에 대해서 정말 배격하며 큰일날 사람들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정도가 뭐 어떤가라고 생각합니까? 이단에 대한 포용적이며 용납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종으로 삼는 자들이며 잡아 먹는 자들이고 사로잡히게 하고 자고하게 하고 거역하게 하며 뺨을 치더라도 받아들이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인생을 파괴하게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악한 목적으로 자신들의 일을 행하고자 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행위를 용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 애쓰는 자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존경하며 그 모습을 귀히 여기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고후]11: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후]11: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렇게 특이하고 기이한 이론과 가르침으로 자신들만의 진리를 전파할 때에 사실 진실한 주님의 종들은 애써서 가르치며 돌아보고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이 약하고, 교육이 부실해서 이단에 갔노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말씀이 약하고 교육이 부실한 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를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주님의 종들은 이제까지 복음을 위해서 애를 써왔고 지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들은 수고를 넘치도록 했고 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도 맞고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종들이 그러한 고생과 애를 쓰며 복음을 지켰고 성도들을 섬겨왔습니다. 이단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종들의 애씀을 무시하거나 비웃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간계에 놀아나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고후]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종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통해 복음이 온전해지고 우리가 그 속에서 자라갑니다. 그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듯한 이단에게로 빠질 수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아비멜렉의 악행에 대해서 기드온의 살아남은 아들 요담이 했던 비유를 다시 살펴봅니다. “[삿]9: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삿]9: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삿]9: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삿]9: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그는 진정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자를 저버리고 자신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자에게 나아가던 세겜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정통신앙은 성도를 온전케 하지만 이단신앙은 성도를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믿은 가르침과 진리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교훈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굳건히 지켜갈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굳건한 진리의 바탕에 든든히 서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온전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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