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58히 6; 1-8 성령에 참예했다가 실족한 자들에 대한 소망2Loading the player...
58히 6; 1-8 성령에 참예했다가실족한 자들에 대한 소망2_2
2016. 8. 5. 금. 금요철야
*개요: 히브리서연구, 분석적해석 [히]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히]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명감당을 하다가 변질된 사람이 있지만 성령충만을 받았다가실족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교회생활을 통해서 신앙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어떤때에는 교회생활 속에서 신앙의 퇴보와 실족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마치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만 늘 잘하게 되지는 않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신앙생활을 하지만 발전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그 퇴보와 실족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은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한번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신앙생활은 무섭고 괴로운 일이되지만 비록 쓰러지고 넘어졌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신앙생활은 오히려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역 하면서 마가요한에 대해서 바나바와 뜻이맞지 않아서 그와 갈라서게 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베드로도 사도로 사역하면서 외식함으로 인해 비판을받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 속에서 바울이나 베드로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노력해서 올바른 삶을살았고 원래대로의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실족한 자들에게 어떻게 권면할 수 있는가에대한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게 실족한 사람들만 잘 인도해도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다시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감당을 하다가 실족한 자들에 대해서 교회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설명해줌으로써전도할 수 있다면 성령충만하다가 실족한 자들에 대해서도 역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을 욕보이는 악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과거에 성령에 참예하였다가 변질되고 타락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는 성령충만 하였지만 지금은 성령충만 하지않은 사람들과는 다른 경우입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실족한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록 악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돌이킬 수 없는 악을 행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히]6:4 한 번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히]6:5 하나님의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히]6:6 타락한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우리는 이와 같이 완전히 타락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다른 실족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완전히 타락한 자들은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다시 회개케 할 수가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았고 욕을 보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완전히 타락한 자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십자가에 못박는가 하면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의 잘못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을 이루지 못하는이유가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예수님께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이 바로 주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이 주님을욕보이는 것을 영어성경에 보면 “subjecting him to public disgrace” 라고나옵니다. 이것은 마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가 당신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스스로를구원하지 못하는 주님을 원망하는 것이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몰지각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에 충만했던 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자신의 죄와 책임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그 모든 죄와 허물을 돌릴까요? 어떻게 자기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발뺌할 수 있을가요? 그가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회개할 수가 없게 됩니다.
땅이 비를 흡수하듯 성령을 받아서 채소를 내면 복을 받지만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불사름을 받습니다. 이런 타락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정도까지 타락하지 않은자들에게 돌이키라고 말해주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돌이켜야 할까요? 무엇을 돌이켜야 할까요? 이어지는 성경은 땅과 비와 채소와 가시에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히]6:7 땅이 그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히]6:8 만일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여기서 땅은 우리의 마음이고 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령충만은 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 성령충만을받았으면 마땅히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땅이 복을 받을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순종하고 인내하고 겸손하고 충성하고 온유하면 교회에도 유익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도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이 그런 은혜의 비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습니다. 결국은 무엇이 될까요? 불사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땅이 불사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는 은혜의 비를 받을 수 없게 되겠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지금 가시와 엉겅퀴를내는 자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해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계속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마침내는 버림과저주를 받고 불사르게 될 테니까 그렇게 살 지 말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밭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채소를 내라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충만했다가 실족한자들에게 회개하고 돌이켜서 성령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라고 권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온전히성장한 자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히]6:1 그러므로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6:2 세례들과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6:3 하나님께서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사라지고 오직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삶이 펼쳐집니다. 바로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을때 그렇게 됩니다.하지만 이미 타락한 자들은 자신들이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고 불사름이 되고 있다는 자체도 깨닫지 못합니다.
정말 중요한 자들은 그렇게 타락하지 않은 단지 실족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를 두려워마십시오. 그들의 귀에 즐거운 얘기만해주지 마십시오. 그들은 빨리 정신차리지 않으면 곧 버림과 저주와 불사름을 받게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개하여 쓸모있는 채소를 내라고 다시 말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충만함을 다시 회복하라고 권면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권면과 돌이키게 하는 사명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게해달라고 이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통해 실족한 자들을 부르시는 성령님이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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