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11: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1. 하나님은 뜻과 계획에 따라 사람들을 부르신다.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첫 서두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부르심에는 왜 후회하심이 없을까요?
그분께서 주시는 은사에 대해 우리는 늘 그 은사가 옳은 일에만 쓰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기한 은사를 가지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데 쓰다가 결국 적그리스도가 되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여하신 은사적인 재능을 가지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구약을 보아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울로 왕을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그 심정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는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실까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들은 무척 많은 후회를 하고 삽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아쉬워합니다. 만약이라는 표현도 즐겨 사용하는 후회법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내가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선택했더라면, 만약 내가 이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했었더라면, 만약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러면서 다른 경우에
생겨날 수 있었던 더 큰 만족감을 아쉬워합니다. 한도 끝도 없이 생겨나는 이러한 후회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늘 일어나는 안타까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져봅시다. 후회가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심리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후회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것은 자기의 결정이 실패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 실패를 인정하는 것입니다.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더 큰 만족을 가져야만 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어쩌면 후회하는 심리는 스스로에 대한 심한 자책감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 자책감이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에게도 향하여 질 때 하나님께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 주님은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 온전한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절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하고 그 나라를 훼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하나님은 그 시도에 전혀 영향받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시도들을 바꾸어 더 큰 영광과 성취로 변화시키십니다. 그 어떤 존재도, 그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시는 것을
막거나 방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은 실수가 없고 실패가 없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전하신 자신의 뜻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저 사람을 보십시오.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지만 저렇게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하나님께서 부르셨던 저 사람을 보십시오. 비록 처음엔 뭔가 해낼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저렇게 실패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사나 부르심이란 겨우 저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실패하신 것일까요? 과연 후회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일이 그렇게 될 줄 모르고 그러한 일을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까 우리가 들었던 사울의
예를 한번 들어 볼까요?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우기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아시고, 그들에게 왕을 주셨으나 그 왕으로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준비하시고 다윗을 통해 하나님은 진정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이 원하는 그러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심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회하노라’고 말씀하심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신인동형적
표현으로써 하나님의 신적 감정을 인적인 감정으로 변환시켜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후회하노라고 하신다 할지라도 자신의 계획과 뜻을
관철시키는 일을 실패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후회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놓여 있습니다. 상황을 주관하시고
능히 다음 상황을 예비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저 실패라고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을 실현하기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은사를 주심과 우리를 주의 일로 부르심에 대해서 후회하심이 없이 늘 성공적으로
그 뜻을 실현하시는데 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주신 은사에 대해 후회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주시고 부르신 하나님은 후회하시지 않는데, 도리어 우리가 후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는데, 그분의 은사와
부르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성급하게 모든 것은 끝나 버렸다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대해 후회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시한번 하나님께서는 아직 아무 것도 끝내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3. 하나님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차례대로 부르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의 본문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분의 구원하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는 아직 아무 것도 끝내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본문에 나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원순서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온 그대로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쉬울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전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복음이 제시되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복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자연히 다른 민족에게 먼저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고,
결국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되어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먼저 들어온 복음 안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올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되는
방식 그대로, 동일하게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의 길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 민족을 구원하시는 길을 여셨습니다. 복음이 이스라엘에게 거부되었을 때 복음은 실패한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의 민족을 구원하게
되었고, 결국엔 이스라엘도 그 복음으로 인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구원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구원계획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중간까지만 보았다면 모든 것은 실패요 후회할 것 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뜻을 이루시고
최종적으로 승리하시고 완성하시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고, 또한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역시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서 결국에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의 오묘한 구원계획을 이해하는 자들이 되자.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태초 이래로 준비되어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계획과 작정과 섭리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그분의 판단하심은 측량치 못할 것이고, 그분의 인도하시는 길은 도저히 예상치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 마음을 알겠습니까? 누가 그분에게 더 좋은 계획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습니까? 즉, 누구에게 신세를 지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신세를 갚으시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그분의 계획을 이해하거나 헤아리거나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자신의 계획을 가지시고 그것을 실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후회하시지 않았는데, 스스로 먼저 후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은 때로 골짜기를 지나고 협곡을 지날 찌라도 그 길이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정상으로
가려면 올라가야 하는데, 실제의 삶은 자꾸만 내려간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 다시 말하면 실패하심이란
없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들의 눈앞에 놀랍게 펼쳐지는 산 아래의 광활한 광경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우리가 정상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우리는 고백할 것입니다.
“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