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될 때마다 각 교회는 각종 교육행사로 분주합니다. 우리 교회도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를 마쳤고 이어서 중고등부 학생수련회, 그리고 전교인 수련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해 여름행사는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10년전부터 여름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할 때에도 준비에서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었습니다. 또한 행사를 잘 마치고 난 다음에도 역시 그 이후 돌봄과 양육까지 항상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년의 신앙양육이 여름에 달려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중요성은 컸습니다.
그런데 늘 이러한 영적수련에는 미묘한 긴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과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 사이의 긴장과 갈등입니다. 다시 말하면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과 변화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여름에 더욱 신앙을 갖게 되고 열심을 가지게 되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루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여름을 무사히 예년과 같이 보내서 더 큰 변화없이 평탄하게 지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이번 여름행사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예전과는 다른 더욱 발전된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하던대로 큰 변화나 무리 없이 무난하게 여름행사를 마치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관계인지 짐작하시겠지요?
이와같은 긴장과 갈등 속에서 여름은 지나갑니다. 어찌 됐든 누가 이기든간에 여름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느끼는 것은 어떤 쪽이나 변화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역자가 되었든 아니면 성도가 되었든 교사가 되었든 학생이 되었든 둘 다 동일하게 느끼는 것은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뼈져리게 느낍니다. 우리의 본성은 그냥 편하게 익숙하게 간단하게 모든 것을 끝내버리려고 합니다. 아무리 그것이 다른 것과 충돌하더라도 버티고 이겨내고 견뎌내면서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지의 변화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때문입니다. 그 죄성때문에 우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변화되지 않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도 아주 온전하게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 말씀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본성을 지닌 자들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실현불가능한 목표가 아닐까요? 과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여름행사를 통해서 유초등부 아이들이, 중고등부 학생들이, 전교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얼마나 그일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명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다음, 그저 그들이 유월절 만찬을 나누었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선언할 용기도 없었고 그럴 만한 배짱도 없었습니다. 다만 도망가지 말고 성령의 부어주심을 기다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예수님과 3년동안을 같이 살면서도 변화되지 못했던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한번에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 용감하게 방언을 말하며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루에 삼천명이 믿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봇물터지듯이 복음전파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전부 성령께서 하신 일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신다면 단지 순종하는 것으로 그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죄성으로 살지 않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3. 하나님은 그들의 본질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표면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조금만 인간적으로 노력해도 금방 이룰 수 있는 그런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함으로 제단에 불이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불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엘리야 선지자가 준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불을 달라고 기도한 것 뿐입니다. 그 기도가 진실했고 그 기도가 열심이 있었으며 그 기도가 간절했기에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제단에 불을 내리셨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불을 받기 위해서 그 성령충만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불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증거란 그레데인들이 거짓말을 잘하며 악하며 자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정말 맞다고 바울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레데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바울은 그들을 꾸짖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저희의 믿음이 온전케 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성이 있고 악한 그레데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디도는 노력해야 했고 포기하지 말아야 했으며 그들이 믿음을 온전히 가질 수 있도록 악한 자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도록 그들을 꾸짖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경고도 있고 견책도 있고 수찬정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치리를 하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성도들의 잘못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랬다가 교회가 분란에 처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해도 온전히 변화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악한 자들과 다른 모습을 갖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만이 그들과 구별되는 방법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꼭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들에 대한 증오와 미움은 그들이 꼭 심판받도록 하시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겉모습은 어떠할 지라도 마음이 악하고 패역했기 때문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모습은 가증스럽고 패역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척 하면서 행위로는 부인하는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을 예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과 상종하지 말고 교제하지 말고 그들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아는 것을 거부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어서 더욱 구별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들어가게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신천지 교인이 기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히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하니 우리는 특별히 그 이상한 행동을 잘 구별해서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겠습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디도는 바울에게서 위임을 받고 책임을 지고 그레데 사람들에게 나아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바울이 그에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죄성이 많은 그레데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온전한 성도로 세우는 일이었고 그 일은 단지 디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온전한 성도로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서는 온전하지 않은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그러한 모습을 버리고 그 반대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먼저 그런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까 읽은 16절 말씀은 그 반대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모습은 행위로도 하나님을 시인하는 자들이고, 복종하는 자들이며, 모든 선한 일을 취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도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을 통해 그러한 자로 더욱 성숙해져 나갈 것입니다.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이 세워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가장 분노하시고 가장 미워하십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이 받으시는 자들이 되고 다른 사람을 세워나가는 자들이 됩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받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제목
-우리가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들로 세울 수 있도록
-학생수련회, 전교인 수련회가 사람들을 세우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개요
1. 사람들은 본성상 악하고 연약한 면이 있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2.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3. 하나님은 그들의 본질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4.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들이 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