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숙] 48갈 5; 1-6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2
48갈 5; 1-6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2_5
2020. 5. 1. 금. 금요철야.
*개요: 갈라디아서 연구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사랑 [갈]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갈]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과거의 삶으로부터 우리가 더욱 변화되어지고 있다는 표적을 찾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러한 표적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무엇이 우리가 변화되었고 성장하였으며 발전되었다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기준이 될까요? 그것은 행동의 변화일까요? 습관의 변화일까요? 아니면 이루어놓은 어떤 업적의 결과일까요? 우리가 단지 그러한 차이들과 변화들을 근거로 해서 스스로가 발전했고 달라졌으며 성숙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자기 자랑에 국한되는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단순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이고 뿌리깊은 마음의 변화와 성숙과 성장을 보장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현재 앞서고 있는 듯한 모습에 착각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래서 괜히 우쭐해져 버리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악순환이 되어서 우리는 계속 고만고만한 성숙과 퇴보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기준과 목표는 달라야 합니다. 그것은 행동이나 외면적인 모습, 율법적인 규칙들에 있어서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5, 6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는 것은 남보다 조금 더 낫거나 혹은 모자르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원대한 포부와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 안에서는 그 목표를 바라보고 계속 전진할 뿐입니다. 행동적인 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의의 소망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라는 만족감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꽤 잘해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율법적이며 행위적인 모습에 있어서 크게 나쁘지 않은 상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목표를 보고 계속 달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날마다 성장시키는 힘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앞의 3, 4절에서 보면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갈]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는 율법안에서 의로움을 얻으려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계속 붙으려고 하고 그 은혜를 계속 사모하며 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목표입니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자만과 안위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리스도께 붙고자 하는 열심으로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행동적인 규칙들로 스스로를 얽매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종의 멍에를 다시 지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관습과 행동양식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얽매임은 나중에는 스스로 탈피하고 싶은 더할 나위 없는 괴로움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그럴 때 자유롭게 되고 온전하게 됩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할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가지고 자녀의 명분을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바라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분명 종교적인 삶과 다릅니다. 그 메마르고 강퍅하며 유한한 종교적 율법적 삶은 자유로우며 기쁘고 충만하며 끊임없이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삶에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욱 이러한 삶을 위해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참된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영적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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