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숙] 40마 15; 21-28 큰 믿음을 가진 여인2Loading the player...
40마 15; 21-28 큰 믿음을 가진 여인2_5
2019. 4. 12.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성숙케 하시며 연단시키시는 것은 좀처럼 쉽게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시지만 막상 그런 일을 당하고 있으면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연단케 하심을 받는 것인지 단순히 잘못한 죄악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어려움의 의미가 하나님의 연단케 하심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하심인지의 차이는 무척 큽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크시기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 뒤에는 새롭게 싸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회복해 주십니다. 고통이 자신의 잘못으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어려움 속에서 근신하며 소망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연단과 성숙케 하심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소망을 잃느냐 잃지 않느냐 입니다. 소망을 잃지 않을 때 큰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자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 이었습니다. 그에게 사랑하는 딸이 있었지만 그 딸도 역시 이방인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방인들의 병을 다 고쳐 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또한 그 이방인들의 자녀들까지 다 챙기실 필요 역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을 바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딸을 낫게 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귀신에 들렸던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주님에게 나아왔다는 사실이 그를 소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죄때문에 그렇게 죄의 대가를 치루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께 나아와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그런데 예수님은 막상 찾아온 이 여자에게 냉담했습니다. 찾아온 것만으로도 소망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통해 거부하셨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다른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연단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가나안 여인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그 시험을 통해서 이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국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 여인을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굳세게 해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이었지만 주님께 대한 큰 믿음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모욕과 거부 속에서 믿음이 굳세게 될까요? 믿음은 오히려 응답과 확신 속에서 더 굳세어 지는 것 아닙니까? 과연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것이 믿음을 강하게 만듭니까? 아니면 축복과 응답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강해집니까? 다시 말하면, 정말 고통 당할 때에 믿음이 더 강화됩니까?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 사이에 여러 번 대화가 오고 갔지만, 특히 우리는 이 여인의 대답에 주의해야 합니다.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비록 개일지라도 주인으로부터 도움을 입고 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천한 자일지라도,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비록 죄인일지라도 주인되신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자를 도우신다는 확신입니다. 분명하고도 확신있는 이 고백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큰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을 들으셨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어려운 자를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오늘도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연단이든 혹은 죄의 대가이든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그 고통의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의 시간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과정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연단과 성숙의 시간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죄의 대가로 시작되었던 고통과 어려움일찌라도 우리는 주의 연단과 성숙케 하심으로 인도되며,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만을 바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인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그 여인은 예수님을 굳게 붙들었을 때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다윗의 자손이었다가 주님이었다가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긍휼을 받았고 개와 같은 자였지만 기회를 얻었으며 주인의 종으로서 소원의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여인이 그 힘든 시간을 통과하게 만들었던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비록 개일지라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것. 비록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일지라도 주님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 그래야 살 수 있다는 이 커다란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옳다 인정해 주실 것이며, 우리들의 짐을 내려 주시며 우리들에게 기쁨과 안식과 평안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정말로 우리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진실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삶 속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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