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약한 자들에 대한 비판
교회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는 서로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더 큰 감정적인 문제로 발전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작은
불씨와도 같아서 여기에 많은 기름이나 휘발성 물질이 더하게 된다면, 커다란 화재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바로 이러한 점을
주의한다면 우리가 애써 이룩한 교회를 삽시간에 불사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비판하는 일을 조심할 수 있을까요?
비판하는 일로 인해서 커다란 파국을 맞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은 그냥 무조건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입을 꼭꼭 들어막는
것은 입을 열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움이 많습니다. 더 역효과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명한 방법이란 입을 막고
마음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돌려서 아예 입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입을 막는 것 보다도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혜는 이미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보다도, 아예 문제가
시작되기 전에 적용하는 것이 더 효과가 높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돌리게 만드는 것일까요?
비판하지 말고 받으라
1절 말씀에서 우리는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찾을 수
있습니다.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그런데, 이것은 그냥 비판하지 말라, 또는 어떠한 것들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더욱 ‘받기’를 위한 노력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받으려는 것’은 그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악한 자가 아니라 연약한 자입니다. 그를 비판하지 말고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연약함’은 겉으로는 연약함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강함으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강해 보이기 때문에 비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연약하다고 생각하면 비판하지 않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심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달려 나갈 때, 쉽게 나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힘을 모을 때, 제대로 힘을 모으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기를
쓰며 노력할 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연약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혹은 의심하고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물러서며 혹은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왜 의심하느냐, 왜 두려워 하느냐, 왜 순종하지 않느냐,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 왜 포기하느냐는
비판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받을 때의 모습
교회 생활 속에서 남들처럼 하지 않을 때, 비판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 생활은 금새 심각한 갈등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왜 예배에 오지 않았느냐, 왜 헌금을 하지 않았느냐, 왜 봉사를 하지 않았느냐, 왜 헌신을
하지 않았느냐,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서 비판을 하기 시작한다면, 당장 아무도 그 모든 비판에서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 사이에서 나타나는차이와 격차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모든 차이와 격차가 일어나는 이유는
오직 믿음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많고 적고의 차이도 아닙니다. 그것은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강함과 약함의 차이를 먹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 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어떤 자는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모든 예배와
기도와 경건생활과 헌금과 십일조와 기타 교회생활에서 감당되는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는 딱딱한 것보다는 채소와 같은 것을
먹습니다. 쉬운 것, 감당할 만한 것, 여유있는 것을 먹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십자가의 군병으로서 특수부대원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자들은 특수부대원이 되지만, 어떤 자들은 보통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함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믿음이 연약하느냐고 비판을 할 것입니다. 그것도 먹지 못하느냐고 업신 여길 것입니다. 그러면 먹는 자와 먹지
않는 자 사이에 커다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먹지 못하는 자는 역시 먹지 못하는 자로서 먹는 자에 대해
묘한 미움이 생깁니다. 자기들은 먹을 줄 안다고 으시대고 기본도 못한다고 업신여기는 그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반감을 갖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폄하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먹지 못하는 자와 먹는 자 사이에 커다란 불신을 일으킵니다.
이런 문제가 한번 불거지면 상당히 치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갈등이 깊어지면 커다란 상처가 됩니다. 초가 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교회도 이런 갈등은 전교회를 다 불사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기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서로 서로를 갈라서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기준에 맞아도 문제고 맞지 않아도 문제가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기준입니다. 주님의 관점으로 교인들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기준은, 시각은 이렇습니다.
“3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주님은 복음으로 각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영적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받으십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받으시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먹는 자들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먹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먹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주님께서는 다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걱정될 것입니다. 내가 비판해주어야 잘 될 것 같은데,
왜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러면 언제 저 사람이 바르게 생각하고 옳게 행동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고
계시는 중입니다.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주님이 그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권능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인생막대기와 사람채찍으로 변화시키시며 굴복시키시고 성숙하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주의 하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용납하고
용서하며 기다리고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과
은혜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더욱 아름다운 우리 교회를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