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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력] 44행 7;31-34 발의 신을 벗으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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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31-34 발의 신을 벗으라2_5

 

 2014.10.3..금요철야.

 

*개요:    사도행전연구,

7: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7: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7: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별로 자신의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도 가장 외모에 신경을 쓰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란 바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사람을 만나지않을 때에는 별로 외모나 겉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고 살지만,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는 특히 그 사람에 대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겉모습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무례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실수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옷차람이나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누가 보더라도 상대방은 중요한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옷차림을 하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런 사람은 원래 그렇게 아주 무책임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제대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신기한 일이 어떤 의미인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한 그에게는 그 의미를 알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그가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를 깨닫도록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세는 영문도 모르고 자신의 불경건함과 부정함으로 인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어느 날 양을 치던 중 광야에서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를 보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이 말을 들었을 때, 모세에게 드는 생각은 두려움뿐이었습니다. 감히 반가워한다든지, 기뻐한다든지, 엎드려 절을 한다든지 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조상 대대로 알려져 내려온 그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능력과 권능과 영광의 하나님에 대해서 후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들어서 알고 있던 모세였기에, 그분이 누구신줄 알고 나자, 그 엄청난 위엄과 권능에 짓눌려 무서워진 나머지 그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닫고 나서, 무서움에 기가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 주십니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그제까지, 너무나 두려워서 옷매무새를 고친다든지 엎드린다든지 하나님께 절을 한다든지 하는 그 어떤 행동이나 반응도 나타내지 못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발에서 신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거룩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거룩해서 신발을 싣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가장 청결함을 의미합니다. 아무데나 돌아다니면서 신고다닌 그 신발을, 먼지와 흙으로 가득 찬 그 신발을 벗는 것은 모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결한 행동입니다. 너무나도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인 모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낮게 엎드리는 자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더러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건한 자세는 바로 신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임재를 의미할 때만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에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났을 때에도, 그는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결한 모습을 보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최대한의 정결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는 장소의 변화에 있지 않습니다. 모세가 허둥지둥 자신의 신고 있던 신을 벗어야 하며, 전쟁을 위해 잔뜩 무장을 하고 가던 여호수아가 정신없이 재빨리 신을 벗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경건한 장소에 들어섰기 때문이 아닙니다. 집안에 들어설 때 신을 벗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이 어떤 성스럽고 거룩하게 구별된 특별한 장소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신을 벗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다가 신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신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길가에서 신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왜일까요? 왜 난데없이 그들은 자신의 신을 벗어야만 했을까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경건하고 정결한 모습을 보이며 엎드려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었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내려오셨기 때문에 그들은 황급히 자신의 있던 곳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로 가는 법인데, 천한 자가 귀한 자에게로 나아가는 법인데, 그래서 귀한 자에게로 나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정결케 하고 거룩케 하고 구별하고 씻고 몸단장하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나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인간들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둘러 황급히 그 자신의 모습을 정결하게 거룩하게 하기 위해 그 발에서 신을 벗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자신들이 마땅히 보여야 하는 예의를 보이도록 명령받은 것입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우리는 모세에게로 내려오신 하나님을 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사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을 봅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몸속 직접 모세에게로 나타나, 모세의 있는 곳을 정결케 하시고 모세를 만나주시는 그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직접 내려오시는 하나님, 일일이 정결케 해주시는 하나님, 고통을 돌아보시고 그 탄식을 풀어주시기 위해 친히 강림하신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말할 수 없는 은혜로우신 분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하나님앞에서 신을 벗고, 두려운 마음으로 모셔 서는 모세의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그저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그가 처한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었다면,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자기가 누굴 만나고 있는지, 자기가 있는 그곳이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신을 벗고 엎드려 자신에게 임하신 그 하나님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하나님의 존전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엎드려서 신을 벗어야 하는 자는 모세만이 아닙니다. 자기가 누굴 만나고 있는지를 깨닫고, 그 분 앞에서 무례함이나 경솔함을 범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경건케 하며 정신을 차려 서둘러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어야 하는 자는 모세 만이 아닙니다. 바로 이시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 앞에서 신을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 앞에서 흠이 드러나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이시간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강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배시간을 소홀히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예배중에 하나님 외에 다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말씀을 듣는 시간에 졸며, 왜 전혀 두렵거나 경건한 마음 없이 그저 재미만을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아는대도 불구하고, 예배를 그저 인간들이 즐기는 축제로 만들어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예배중에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기호를 충족시키며 마음을 후련하게 하기 위해 온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가 되고 하나님은 들러리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인간들이 본질이 아닙니다. 인간들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예배의 본질이요 핵심이요 주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관심을 기울여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을 묵상해야 하며,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재미가 아닙니다. 사람의 취미가 아닙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저 나타나신 것으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에게서 경건과 정결의 행동을 받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신을 벗는 것은 이제 앞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임하셔서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강권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단지 옷매무새를 고치고, 단지 마음의 신을 벗고, 단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분의 뜻을 깨닫는 것이고 그 뜻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지금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는지를 깨달으십시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망령되게 불경건하게 부정하게 예배를 드렸다면, 앞으로는 정성스러운 경건한, 구별된 진지한 예배를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평생동안 드리는 예배속에는 어쩌면 그렇게 진실하게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설교자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 사람의 말을 전하는, 세상의 말을 전하는 설교자는 그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배에 임하는 자세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그것은 설교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도 예배자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졸 것입니다. 딴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헛되이 왔다가 헛되이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자세에 책임을 지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진실한 마음과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에 나오고, 예배시간에 임하시는 신령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되며,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우리의 예배는 주께서 받으시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나에게 임할 것입니다. 모세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뜻은 예배를 통해서 바로 나에게 임할 것입니다. 모세가 들었던신을 벗으라는 음성이 여러분께도 들리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와 같은 주님의 뜻이 여러분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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