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함] 44행 28; 11-20 쇠사슬에 매인 이유2Loading the player...
44행 28; 11-20 쇠사슬에매인 이유2_5
2016.5.6.금.금요철야
*개요: 사도행전 연구 [행]28: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디오스구로라 [행]28: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행]28: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행]28: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가니라 [행]28: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행]28:16 우리가 로마에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행]28: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행]28: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행]28: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행]28: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매인 바 되었노라
사도바울은 여러 일정을 거쳐서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쇠사슬에얽힌 모습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인으로서 로마에 압송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로마인으로서 가이사의 재판을 받기를 호소했습니다. 그래서그는 가이사 앞에 죄인의 모습으로 송사자의 모습으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판으로 누군가를만나게 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지금 이루어질 수 없는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바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가이사는 잔인하고 포악한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왜 그런 모습으로 로마에 오게 되었을까요? 좀더 좋은 모습으로 로마에 오면 안되었을까요?
바울 자신이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본다면왜 그가 그렇게 로마에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로마에 오자 어느 정도의 자유로움을 허락받았습니다. 가이사를 만나기 전까지 한 집에 감금되었는데 그곳에서 자기를 찾아오는 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자기가 연금되어 있는 집으로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28:17 사흘 후에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그렇습니다. 그는당당했습니다. 죄인으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의모습이기는 했지만 죄인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왜 오게 되었을까요? 19절입니다. “[행]28:19 유대인들이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 말속에는 그간의 과정이 나와있을 뿐 더 근본적인 이유를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고 가이사에게 호소하였기 때문에 로마로 압송되어왔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왜 유대인들은 그를반대했을까요? 왜 그런 반대를 무릎쓰며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일까요?사실 그것 때문에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진정한 이유는 20절에 있습니다. “[행]28:20 이러므로 너희를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는 이스라엘의 소망때문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이유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지를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쇠사슬에 매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소망이란 바로 유대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그 구원에 대한 소망때문에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 대해서가이사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매여 로마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온전한 복음의 전파입니다.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소망으로 우리도 역시 세상의 여러가지 쇠사슬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복음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이 아니라 가장 당당하고효과적인 모습으로 로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고백과 마음속에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그이스라엘의 소망을 바로에게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쇠사슬에 매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 원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여기에는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일]3:2 사랑하는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일]3:3 주를 향하여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신것은 주님의 자녀로 그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살아가는 자들은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러하였고 바로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도 더욱 중요한 가치를 위해 포기할 것을 포기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담대하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생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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