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희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16: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6: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6: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6: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6: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지금 같이 읽은 본문의 내용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제가
한번 그 이름들을 세어보니그 이름들만 해도 28명이나 됩니다.
우리가 읽기도 힘들고 알지도 못하는 이런 이름들은 28명이 나오고 본문에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문안하는 다른 사람들까지 감안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문안받는 것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 드는 의문은 우선 이런 것입니다. 왜
이렇게 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였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보기에는 별 의미없어 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우리가 그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별 의미없어 보이는 부분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성경에서 아무 의미가
없어서 삭제 가능한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한부분도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이 없고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은 본문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이렇게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을까요?
우선 이 이름들을 볼 때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이라는 말입니다.agapeton mou,나의 사랑하는 이라는 뜻인 이 말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나의 사랑하는 암블리아.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 나의 사랑하는 버시..... 이제
우리는 바울이 그저 인사치례로 이들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한마디로 그들이 바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바울이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들을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이름들을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문안하는 것입니다. 안부를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로마교회, 언제나 항상 그 마음속에 있었고
날마다 가보고 싶어하였던 로마교회입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여러번 시도하였지만 그러나 길이 막혀서 마음먹은 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항상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는 상황때문에 바울은 그같은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 자신이 아시아,마게도냐,헬라
등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뒤 자신과 함께 있었던 교인들이 로마에 가서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바울은 못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자신과 잘
알고 깊은 교제를 나누었던 형제자매들이 이제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만나보기를 원했습니다.
그 사람들, 자신의 전도사역에 힘을 주고 동역하며 같이 믿음생활을 하였던 그들을 만나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직접 쓴 편지가 아닙니다. 이 편지를 대신 받아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더디오란 사람이 이 편지를 받아적었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부릅니다. 그러면 더디오가
그 말을 받아 적습니다..바울이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안인사를 해야 겠다.
우선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을 해야지 그는 나를 위해 자기 목이라도 내어주려고 했으니까. 또 내 사랑하는 에베내도에게도 문안을 해다오. 그리고
마리아에게도 문안을 하고 아! 나와 함께 옥에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도 빼놓을 수 없지또 누가 있을까? 사랑하는 암블리아도 있지 그리고 우르바노도 있고 스다구도 있구나’
바울은 이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수고와
고생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이름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름들을 다시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어려움을 같이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본문에서 바울은 이 많은 이름들을 기억이 생생하게 다 기억해내어 그들에게 안부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움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고맙기 때문에 이 모든 이름들을
기억해서 편지에 적어 넣은 것입니다.
신형교회 성도여러분, 기억되는 이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에게
기억되는 이름이 되시고, 하나님께 기억되는 이름이 되십시요. 사람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 앞에서도 기억이 되는 이름이 되십시요. 여러분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살아 있도록 하십시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도록 하십시요.
성도 여러분, 어려움 속에 함께 하십시오. 평생에 기억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려고 하지 마십시요. 편하게 신앙생활해야겠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아무도 여러분의 이름을 모른다면
하나님도 여러분의 이름을 부인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위의 교회에서 기억된다면 하늘나라에서도 기억될 것입니다. 귀한 상과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더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4절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이제 동고동락을 같이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싫든 좋든
이제 이 시기를 같이 보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같이 한다면 더욱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또 기쁨을 같이 한다면 더욱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작은 교회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어려움을 함께 무사히 잘 통과한다면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름들이
될 것입니다.
바울이 기억하는 이름들은 가장 어려울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목이라도 내놓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함께 옥에 같혔으며 함께 고생하고 함께 동역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기억되는 이름들이 되고 싶어 하신다면 고생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쁨도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억되게 하신다면 하나님도 그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문안을 했던 이유였습니다.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가 생명의 세워짐과 변화와 발전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수고한 자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그들이 문안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의 이름들은 자신만의
행복과 자신의 가족만의 유익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이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기억되어 우리에게 교훈과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되는 이름들이 되십시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여 살지 마시고 하나님과 그의 의를 위하여 사십시요. 교회에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기억이 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