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화목] 7삿 17; 1-6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결과2
7삿 17; 1-6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결과2_4
2018. 7. 4. 수. 수요예배.
*개요: 사사기 연구 [삿]17: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삿]17: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삿]17: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삿]17: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삿]17: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우리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실수와 죄 투성이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줍니다. 본문의 상황은 삼손 이후에 사사는 사라지고 지도자는 새로 나타나지 않아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의 상황은 전체적으로 제 각각인 상황이었습니다.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러한 시대분위기를 성경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러한 분위기는 좋은 것인가요, 나쁜 것인가요? 이것이 시대를 구별하는 열쇠가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쁜 것이었고 그 결과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이 시대 분위기가 좋은 것이었는지 나쁜 것이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삿]17: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삿]17: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미가의 어머니는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뒤에 그녀는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미가는 그것을 듣고 그 은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은을 훔친 뒤 저주를 받을 것이 두려워 은을 돌려 주었고 어머니는 그 은을 받은 뒤 아들에게 저주가 미칠까 봐 두려워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사건은 이를 계기로 우상을 하나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총 일천 일백 세겔 중 이백 세겔로 신상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삿]17: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삿]17: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하나의 사건이 우상을 만드는 것으로 변질된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속건제를 드려야 할 사안에 대해서 우상을 만드는 것으로 대치해 버렸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가는 그 신상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해서 제사장을 세우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삿]17: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그들은 지속적으로 그 신상을 섬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과연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어디 있는 것일까요? 이는 마치 가족불화를 겪은 뒤에 친목도모를 위해서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주말에 여행을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주말여행을 위한 담당자를 세우고 세부프로그램을 짜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상이 생겨나는 이유는 그들에게 아무런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없었고, 어머니는 죄에 대한 기준과 신앙에 대한 기준이 없었고, 다시 아들은 생겨난 우상에 대한 기준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러한 삶에 기준이 없다면 동일한 결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삶에 대한 신앙적 기준이 불의와 정의를 구별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며 항상 그 은혜가 넘치지 합니다. 예수님은 우상숭배가 되지 않는 온전한 관계회복의 방법을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럴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온전한 계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할 때에 우리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가 되지 않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기준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따라 살기로 노력하며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죄를 제거하시며 의를 세우시고 끝없는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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