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마] 40마 27; 27-32 억지로 같이 가는 자2Loading the player...
40마 27; 27-32 억지로 같이 가는 자2_5
2019. 11. 1. 금. 금요철야.
*개요: 마태복음 연구 [마]27: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마]27: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마]27: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27: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마]27: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빌라도의 재판이 끝나고 사형에 처해지기로 결정된 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그 어떤 모욕과 괴로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형을 받기 위해 군병들에게 넘겨 지신 후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제자들의 배신과 대제사장 뜰에서의 모욕은 로마 군병들에게 당하는 것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금방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던 이유는 그 당시의 십자가형이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을 통해서 죄사함을 이루시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밑바닥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벗기고, 홍포를 입혀서,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희롱하며, 침 뱉고, 그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이는 앞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죄인에 대한 모욕이었으며 그가 당하게 될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받을 수 있는 한 모든 인간적인 모욕과 고통을 당한 뒤에 예수님은 마침내 그분이 아버지를 위해서 마시기로 했던 잔을 마시기 위해서 끌려 나갔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에 달리기 위하여 골고다로 가는 언덕 길은 많은 시간 동안의 감금과 고문으로 인해 쇠약해진 예수님께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십자가에 달릴 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법이지만 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골고다에 이를 때까지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또는 같이 지는 자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던 것입니다.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그의 할 일은 오직 골고다 까지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것이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만 가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도 도울 수 없는 그 험난한 십자가의 길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자가 사실은 억지로 그 일을 떠맡은 자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합니다. 이점은 우리에게 억지로 하는 일이 사실은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일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도 아니고 자원해서 한 일도 아니지만 해야 하니까 하는 충성스러운 마음이 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미 이러한 충성스러움에 대해서 주님은 마태복음10:3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찍부터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의 일에 매우 합당한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고 자기 십자가만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잘 감당한다는 것은 충성스러고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감당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주님의 일에 합당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하는 많은 일들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힘들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억지로 하는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절박함이 있고 성실함이 있으며 우직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그것을 감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단지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해결해 주십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주님을 애써 따라가가면 나중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각 사람에게 십자가는 어떤 부담스러운 대상일 수도 있고 어려운 형편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이나 주변의 열악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십자가 속에서 우리는 주님께 억지로라도 나아가야 합니다. 항상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렵지만 주님 안에서 그러한 순종과 충성은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동참과 연합과 인내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구원의 성취는 내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달리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저 억지로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욱 주님을 잘 따라나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합당하게 되어서 주님의 일에 계속해서 동참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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