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개요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을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9절 말씀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미칠 환난과 곤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영’에게 대한 것임을 주목하십시오. 심판은 세상의 육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는 영에게 주어집니다. 마지막 심판은 그러므로 영원한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에는 인종과 민족의 제한이나 구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고, 중심으로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선을 행하면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요, 악을 행하면 환난과 곤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요? 그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율법이 기준이 아닙니다. 율법이 있든지 없든지, 있으면 그것으로 기준이 되고, 없더라도 없는대로 판단되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준이 아니라, 행위에 따라 판단하십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듣는 자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롭게 여김을 받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을 지라도, 양심이, 그 마음이, 그 생각이 , 그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 인해 율법의 정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과 악이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악은 지으면 지을 수록 악해지지만, 악에서 선으로 넘어가는 경계는 분명한 단절을 보입니다. 그 단절을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악에서 선으로 넘어가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단절이 존재할까요? 그 이유는 인간은 완전히 무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하나라도 율법과 양심을 어기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럴 때에만 하나님께 대해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민족들에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나 믿는 자에게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지만, 악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16절이 그 해답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그 사람이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하나,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혹은 죽은 믿음인지, 노력하는 중에 있는 믿음인지를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명확하고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음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믿음에 따른 선을 행하기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실한 믿음이 나타내 보이는 증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