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놀라운
성령충만을 통해 교회의 조직이 생겨나기 시작한 뒤, 성령의 역사하심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러한 역사하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기적과 병고침과는 다르게,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통한 권세를 행하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는 사도들을 영화롭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건의
시작은 2절부터입니다.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여기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사도들에게서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는 친숙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앉아있던 자였고, 사도들은 늘 그 시각에 기도를 드리러 성전에 올라가곤 하였습니다. 친숙하였던
자였고, 늘 보던 자였지만, 다시 한번 그 앉은뱅이는 사도들을
간절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얻기를 기대하였습니다.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앉은뱅이에게는
사도들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사도들이 준 것은 금과
은이 아닌 치료의 은혜였습니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그에게 걸을 수 있는 다리를 준 것이었습니다.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이 사건은
큰 놀라움을 일으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이런 놀라운 일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외칩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자신의 이름이나 능력으로 한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마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이름의 권세로서 능력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사와
이적들의 목표는 분명히 그들 자신의 영광과 권세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16절에서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것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복음 전파나 전도를 위해 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보이시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앉은뱅이를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자였다고 생각했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도들을 바라보았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으며, 그의 육체는 그의 믿음에 따라 반응하여서, 완전히 낫게 만들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올리지 않은 헤롯의 어리석음이 나타납니다.
“행12: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은
하나님께 가야하는 영광을 가로챔으로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개인의 경건이나 능력을 통해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과 그 놀라운 복음은 놀랍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복음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 신기한 간증과 함께 병행됩니다. 그러나 신기하고 놀라운 간증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누리고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더욱 새로운
하나님의 일들이 지금 시대에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