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전도를 나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복음’에
대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복음이고 교회에 나가서 구원의 도를 깨달으시라고 하는 것이 복음이겠지요. 그런데, 그 ‘복음’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복음’의 참된 유익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시라고 하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제사를
못 지내게 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유교적 관습에 너무나 치중한 나머지, 복음은 제사 못 지내게 하는 종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한, 천주교를 믿으시는 분들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원 줄기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불교를 믿으시는 분들은 사람이 욕심을 버리고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기독교는 축복만 강조하니 믿을게 못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외에도 아무 종교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분들도 나름대로의 복음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십니다.
주일날 놀러가야 한다, 장사해야 한다, 일해야 한다, 바쁘다,
여유가 없다, 믿고 싶지 않다....... 참으로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들의 대부분은 복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에 근거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참된 본질은 무엇일까요? 흔히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대별되는 복음의 진수는 과연 그 한마디에 다 요약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 한마디로 복음의 참신성과 놀라움을 한번에 다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은 복음에 대한 참된 본질 중의 하나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사실, 그 한마디로 다 한정되는 것이 아닌 심오한 원리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저 그 많은 본질 중의 하나를 강조하는 것 뿐이지요. 그래서 우리도 본문을 중심으로 그 많은 본질 중의
하나를 강조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펴볼 복음의 본질이란 복음의 유익성과 복음의 편리성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복음은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교인 수를 불리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는데, 사실 그것 때문에 복음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구원받기 위해서 이전까지는 율법을 다 지켜야만 했고,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고, 늘 금식과 회개와 자학의 삶을 살아야만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없이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그렇게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하찮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낙심할 것 없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음과 함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으니까요.
우리는 그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 한명 구원시키는 것은 우리의 말솜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 구원시키기 위해 소요되는 구속의 대가도 실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 진 것입니다.
결코 복음은 더욱 악하게 만들거나,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기 전 상황을 구원받고 난 다음에는 전혀 새롭고 놀랍고 기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구원이 아닙니다. 처절한 고난과
환난의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너무도 놀랍고 기쁘고 즐거운 구원입니다. 바로 그런 구원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이 이러하고, 복음의 본질이 이러한 구원이라는 유익을
주기 위함이기 때문에, 복음의 기본적 성격은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얻는다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러한
구원의 기쁨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구원의 유익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들어보기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들려준 다음에는 알게되는 것, 그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통해서 이 모든 복음의 신비함을 알게 됩니다.
복음의 또 다른 본질은 편리성입니다. 잡다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자격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종적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만약 복음에 차별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복음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복음을 좀 더 잘 설명듣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는 것 뿐이지, 교회에 나갈
형편이 안된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주일날에 그렇게 바쁘다고 해서 그것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기 위해 어떤 행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사를 금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사를 금하는 것은 복음에 따라오는 삶의 한 모습일 뿐이지 그것 때문에 복음을 거부하지는 마십시오.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계속 제사를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복음의 본질은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믿으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으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해 주십니다. 오직 그 믿음 하나 때문에 그분은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기 때문에 의인들만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복음은 유익성과 편리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민족, 그 누구에게든지 자유롭게 펼쳐지고 자유롭게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부담감도 갖지 마시고, 어떠한 선입견도 갖지 마시고 복음을
그 본질 그대로 들어보십시오. 그 복음의 기쁜 소식을 통해 우리들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쁨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