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
지난 주 부활절을 보낸 후 여러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고난주간을
마치고 맞이한 부활절의 기쁨은 고난주간이 끝났다는 잠시의 즐거움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신령한 감격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다니는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여전히 하고 있던 가정이나 개인적인 일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부활을 맞이한 이후 우리의
삶은 외관상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절은 우리에게 정말로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을까요?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이렇게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면 우리는 괜한 헛수고를 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저 행사의 의미로 절기의 의미로 북치고 장구치고 했지 겨우 이런 식으로 우리 삶에 아무런 변화와 영향력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활이 우리 삶에 뭔가 영향을 주기는 주었는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마치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커다란 변화가
우리의 삶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오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커다란 유익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부활은 우리에게 주님의 명령을 받게 하였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의 가장 마지막 구절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전도와 선교의 사명으로 주어진 것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임무는 간단명료하면서 매우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것입니다.
"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임무입니다. 우리들은
그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삶속에서 이러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목회자들에게만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전도를 하고, 신앙생활을
도와주며, 교육과 양육하는 이일은 우리 모두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러한 사명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20…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부활의 진정한 효과와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미치는 놀라운 변화와 변화로의 원동력을 보여줍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이러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3. 예수님은 그 명령과 함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은 연약할 때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큰 도움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힌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것이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셔서 마음을 붙들어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어려움을 막아주시고 그 어려움을
뚫고 일어나도록 해 주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 안팎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하나님께서는 단지 부활하신 것만이 아닙니다. 부활의 기쁨을
전해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부활이 끝난 뒤 이제 다시 각자의 삶으로 터벅터벅 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무의미하고 아무런 변화없는 것이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그 이후에 살아계신 주님을 마음속에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더욱 더 마음 속에 크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주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옆에 서셔서 우리가 힘들 때 위로해주십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을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힘이 빠졌을 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그리고 어떠한 해도 입지 않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렸던 그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일을 이루십니다.
다시 한번 이일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의 사명, 양육의 사명, 돌아봄의 사명은 목회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단지 목회자는
그것을 직업으로 할 뿐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파트타임으로 이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인으로 학생으로 가정에서는 아버지로 어머니로
자녀로 나름대로 이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업은 아니라도 부업으로라도 하게 되는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찾으며 먹이며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4.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이 되자.
어떤 경우에 주님이 함께 하심은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제대로 이 일을 하지 않을 때입니다. 게으른 종에게는 주인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릅니다.
놀기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선생님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싫어하고 그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주님이 우리와 늘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감시자요 감찰자요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하고 그 일을 할 때에 힘과 용기와 격려를 얻고 계십니까? 아니면 주님의 일을 등한히 하고 있고 주님마저 자신을 자꾸만 따라다니지 않았으면
하십니까?
부활의 기쁨에 참여했든 하지 않았든, 그 감사와 감격을 느꼈든
느끼지 않았든간에 여하튼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승리입니다. 그 다음 주님은 동행하십니다. 그 동행하심을 기뻐하든
싫어하든간에 주님은 우리를 늘 지켜 보시고 늘 동행하십니다. 그 주님이 감시자가 되느냐 아니면 조력자가 되느냐는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놀라운 능력과 영향력과 능하게 하시는 모든 권세를 경험하면서 늘 이러한 기쁨과 충만함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