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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비전] 45롬 1; 18-23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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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 18-23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5_2b

  

 

  

2020. 9. 13. . 주일오후. 온라인설교

  

 

  

*개요: 성경비전, 6통찰해석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면서 복음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6통찰적 해석의 구성에 따라서 살펴보면서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6통찰적 해석이란 본문을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1.이해: 이해해야 하는 내용

  

2.사건: 이해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사건

  

3.감정: 그 사건의 이면에 있는 감정적 반응 

  

4.신체: 그 감정으로 인해 나타난 신체적인 모습  

  

이러한 구성요소로 생각해 볼 때 본문 말씀은 불신자들이 왜 하나님에 대해서 거부하며 부정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1. 이해: 모든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이 계신지 알 수 없다고 말하면서 죽으면 다 끝이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진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아무리 존경받는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존재에 관한 확신을 어디에서부터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성경 속에 그 분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만으로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신 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이지 그 전에 더 실존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있습니다. 이 세상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포함시켜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러한 원리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우주와 하늘을 생각해 봅시다. 우주의 존재를 우리는 삶의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딱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매체와 자료를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료를 발견할 때에 우리는 우주의 존재를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는 명칭이 있고 구조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실감하며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주를 지은 사람이 없고 만든 인간이 없습니다. 우연히 혹은 저절로 그 오묘함이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완전한 창조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듯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세계 위에 하나님의 손길을 두고 계십니다. 하늘에 바람이 불며 비가 오고 땅에 식물과 동물이 생겨나는 모든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모습들이 전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임을 보이고 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2. 사건: 하나님을 부인하며 거부할 때 그 마음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우주와 자연의 존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과 자랑스러움,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주나 자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역과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기회가 끝났을 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에 현실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이 세상의 심판에 대해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우리들에게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때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존재를 생각하고 그 원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그 존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성경 속에서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이란 오직 믿고자 할 때에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능력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러한 결단이 선행될 때에 믿음이 찾아오고 그에 대한 증거가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부인하며 거부하고 믿고자 하지 않을 때에는 그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더욱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국가권력을 철저히 무시할 때 사람들은 처벌을 받습니다. 그 능력과 역할을 거부할 때 사람들은 형벌을 받습니다. 작게는 벌금에서부터 많게는 수감, 그리고 사형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해당되는 죄에 대한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이와 같이 우리가 행하고 있는 모든 불신앙적인 행동과 하나님을 무시한 행동들은 나중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불신자들이 받게 되는 심판의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면서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3. 감정: 사람들의 악한 반응에는 자신의 우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러한 악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우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상이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물건, 혹은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처벌을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러한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사람의 위치와 모습과 역할이 단지 동물수준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형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중시 여기지 않음으로 인해서 허무한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범죄함으로 인해 벌금을 내야 하고 수감되거나 혹은 사형당하는 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국가의 존재를 아는 것 뿐아니라 국가에 자랑스러워하며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불신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4. 신체: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의 비참함이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살펴볼 때 믿지 않는 자들과 믿는 자들의 모습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받음의 모습의 불신자들의 비참한 형편이었습니다.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이러한 심판의 원리를 생각한다면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녀로서 또 다른 자녀들을 낳고 키우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영광스러움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의 헛된 유익과 바꾸지 말고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지만 보좌 위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면서 천사와 같은 얼굴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헤롯왕은 벌레에게 먹혀서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비참했으며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고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으로 우리를 더욱 채우시고 우리를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들로 우리를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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