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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경비전] 51골 3; 22-4; 1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직장생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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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3; 22-4; 1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직장생활2_2

 

2017. 9. 3. . 주일오후.

 

*개요:  골로새서 연구,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3: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다음으로 본격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곳이 직장입니다. 그 직장에서 하나님의말씀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직장에서 성경읽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단지 경건 생활에 있지 않습니다. 더본질적이고 더 핵심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직장의 기본개념은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입니다. 그래서 직장보다 좀더 근원적인 개념은직업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태초에 어떻게 해서 이러한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직업의 시작을 보여주는 말씀은 창세기 128절입니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말씀 속에서 인간은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자들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살아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해야할 일을 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일이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 이유는 자신이 피조물 됨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6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만큼 탐스럽기도 나무인지라 여자가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전에는 즐겁게 일할 있었는데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고 사탄의 꾀임에 따라서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우리는 죽도록 일하고 죽을 때까지 땀을 흘려야 먹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죽을 때에야 모든 일을 마칠 있게 됩니다. 여하튼 이세상에서 직업은 그것이 고통스럽게 땀을 흘려야 하든 아니면 기쁨으로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려야 하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있습니다. 인간이 직업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업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직업에 아주 밀접히 관여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직업 속에서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신약에서 생각해 보면 훨씬 분명하고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 모두가 갖는 직업 속에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신약의 시대에서 종들이라고 때에는 분명한 신분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전들도 역시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를 두려워하는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오직 주를 두려워하여라는 것입니다. 상전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종과 상전의 관계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에서 종들의 개념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처럼 매여있는 신분의 제한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 밑에 있으면 종이 됩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피고용인이 바로 종의 의미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바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직업을 가지고 직장에 들어가 있으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결국 많은 사람들은 종의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종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는 것은 종 됨을 벗어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종 됨을 떨쳐버리고 자유를 찾으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은 직업을 가지고 직장에서 일하면서 싸워야 하는 것은 상전이나 상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말 싸우고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직업을 가지고 직장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해야만 합니다. 그럴 하나님께서 태초에 주신 모든 부르심을 감당할 있습니다.

 

태초에 주신 직업에의 부르심이 결코 하나님 없이 알아서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꾀임에 빠져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듣거나 보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수고하여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게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의 편안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일을 해야 하고 에덴동산 밖의 모든 거칠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의 신분, 피고용인의 신분, 을의 위치에서도 현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이 잘되고 넉넉해도 그렇고 일이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혹은 어떤 직장에 있든지 우리가 생각해야 것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일을 하면서 주님을 생각하고 의식하면서 있는 것입니다.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럴 모든 일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의 직업은 고상하거나 혹은 허름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직장은 같은 직업이라도 쾌적하거나 혹은 불편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어떤 분야의 일이라도 마음을 다하여 주께서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사람과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차이는 은퇴할 나타납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을 그가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았다면 그는 주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주님의 부르심의 상이 것입니다. 약속이 바로 24절입니다.

“[]3: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아나니 너희는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기업의 상을 주님으로부터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이윤을 통해서 기업의 상을 받는 원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상은 단지 이윤을 추구하기만 하고 이윤은 세상에만 국한되어서 사라지는 것보다 더욱 비교할 없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의 상은 누구에게 많이 주어질까요? 바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은 이윤을 섬기기 때문에 불의한 일에 대해서 별로 거리낌이 없습니다. 일에 대해서 들키지만 않으면 되고 일에 대해서 시장의 반응만 예민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속일 없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저지르는 모든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최근 여러 기업들의 불의한 일들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공무원과 기업이 결탁해서 누가 봐도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듣게 됩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세상에서는 심판을 받지 않거나 혹은 피할 있어도 하나님은 전부 심판하십니다. 모든 기업활동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정확한 심판을 이루시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신문보다도 시민단체보다도 검찰보다도 감사원보다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가 속해있는 직장에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주 적은 경우이기는 하지만 전혀 종이 아니라 상전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위로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부림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결정으로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 있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노조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신문 보도나 시민단체가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검찰이나 공권력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상전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세계에게 가장 부자인 사람에게도 위에는 상전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장 창의적이고 똑똑하여서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는 사람에게도 상전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장 막강하고 범접할 없는 권력을 가진 권위자에게도 상전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심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일할 때에 비로소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직업에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있는 처소와 환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하나님께 기업의 상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의지하며 하나님을 소망하여 나중에 주님 앞에 때에는 풍성한 하나님의 상으로 채워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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